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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휴식 없는 삶

[홍경한의 시시일각] 휴식 없는 삶

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강원국제비엔날레 2018' 사무국이 위치한 춘천까진 자동차로 왕복 5시간 가까이 걸린다. 원체 멀기도 한데다 최근 교통량이 부쩍 증가한 춘천-양양 간 고속도로를 관통해야하는 탓이다. 그래도 주말이나 휴가시즌보단 낫다. 지난여름 경험해보니 출발시간은 있어도 도착시간은 없더라.

많은 시간을 도로에 저당 잡힌 채 새벽에 출발해 깜깜해진 이후에야 귀가하는 일상의 반복은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정신과 육체의 건강에 이롭지 않다. 때문에 의욕과는 달리 집에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모든 물리적 여백을 소진한 후 남는 건 오로지 황금 같은 주말에 대한 기대와 '휴식'에 대한 염원뿐이다.

그러나 주말인들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휴일엔 휴일대로 또 다른 일들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건 간혹 업무의 연장이거나 개인적인 상황들로 채워진다. 어쩌다 생기는 공백 역시 내 몫과는 거리가 멀다.

문자와 전화는 평일과 휴일을 구분하지 않으며, '카톡'이나 페이스북 메신저 또한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댄다. 별 시답잖은 내용으로 새벽에 전화해 불운한 긴장감을 조성하거나 감옥 같은 '단톡방'에 밤낮 구분 없이 초대되는 예도 적지 않다.

이 가운데 어떤 이의 발화로 시작된 카톡 수다는 거의 재앙에 버금간다. 탈출하자니 티가 나는 바람에 괜스레 언짢게 할까 싶고, 끝없는 주절거림을 넋 놓고 보자니 이 귀한 시간에 뭐하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그야말로 갈등과 고통의 씨앗이다.

최악은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 불청객으로 인해 뜻하지 않은 관광가이드 역할까지 맡는 경우이다. 강화도에 4년 가까이 살고 있지만 사실 난 강화도에 대해 잘 모른다. 5000원이면 볼 수 있는 작은영화관이 있다는 것도 근래에 알았고, 그 유명하다는 마니산, 고인돌엔 근처도 안 가봤다. 당연히 맛집 따윈 알 턱이 없다. 하다못해 바로 옆집인 미술관과 박물관도 있다는 것만 인지하고 있을 정도다. 그런 이에게 가이드란 게 말이 되나.

하루라도 조용한 곳에서 쉬고 싶다는 욕망이 서울을 떠나게 했고, 나만의 고요함을 얻기 위해 최소한 하루 300킬로미터를 오가야하는 물리적 부담도 감수했다. 하지만 세상사 어느 하나 내 뜻대로 되는 것 없듯, 어쩌면 가장 쉬울 법한 삶의 질을 위한 휴식 또한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이 비단 내게만 국한되는 것일까. 아닌 듯싶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다수는 휴식 없는 삶에 지쳐있다. 우린 모두 한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하는 노모포비아에 가깝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그 짙은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상대에 대한 역지사지를 바라면서도 원만한 사회적 관계를 위해 눈치 봐야하는 상황들도 숱하다. 소통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배려 없는 행태들에 익숙해져야만 하며, 공동체 내에서 살아가기 위해 혹은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쉼을 반납하는 입장에도 서투르지 않아야 한다.

이런 현실에선 어쩌다 맞는 여유로움은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잠시 멈춤은 되레 밀려남으로 자각된다. 경쟁과 성취, 초조함과 조바심, 강요되는 공감 아래 쉬면서도 움직임을 필요로 하는 순간으로 메워진다. 허나 이 모든 것은 삶의 질과 발전을 저해한다. 생의 즐거움을 잃어 가는 삶을 부추긴다.

휴식은 일보다 중요하다. 사람들은 일하기 위해 쉬기보단 쉬기 위해 일한다는 게 옳다. 휴식이야말로 삶의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덧댈 수 있는 시간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 있는 삶이다. 베로네제의 '가나의 결혼식'(1562~1563)이나 르누아르의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1880~1881)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나와 가족을 돌아볼 수 있는 작은 기회가 요구될 뿐이다.

이에 국가는 정치, 제도, 법률을 통해 휴식 있는 삶을 권장해야 한다.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에서 개인은 이룰 수 없는 이상이다. 다행히 청와대는 지난 8월 청와대 직원의 연가사용 활성화 및 초과근무를 축소하도록 하는 등, 정부기관을 중심으로 '휴식 있는 삶'을 선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아직 구체적 방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노동의 권리 못지않게 휴식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의지와 문제의식을 담았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왜냐하면 휴식 없는 삶을 산다는 건 인간답게 사는 게 아님을 인식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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