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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들녘에도 흥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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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신명이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잔치가 갖는 의미는 각별했다. 이웃 간 얇아진 정(情)을 잔치를 통해 두텁게 일궜고, 동구 밖 마을과의 골 깊은 갈등의 벽도 잔치를 통해 허물었다. 잔치는 들녘을 기름지게 하는 물꼬였으며,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는 소통의 장이었다. 건너 마을 사람들에겐 새로운 만남과 이벤트를 기약하는 갈망이었다. 삶이 버거울 때 사람들이 잔치마당을 기웃거리는 까닭은 그 질긴 질량을 들끓는 설렘의 용광로에 연소하고 싶음에서다.

먹고, 마시고, 춤추는 잔치! 사람들은 그랬다. 잔치에 자신을 투영해 세속의 더께에 접어뒀던 흥의 날개를 한껏 펼치고자 했다. 흥이란 그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화수분이기에 잔치판이 벌어지는 마을마다 신명이 났다. 사람들은 거기에 스토리를 입혀 기적 같은 전설을 꽃피웠다. 크고 작은 잔치를 통해 마음을 텄고, 길을 텄으며, 장터를 열었던 것이다. 잔치는 사람을 구별하지 않았다. 모두를 껴안고 포용했기에 결집력은 강했고, 흩어졌던 마음들이 하나로 모아졌다.

그 마을잔치가 축제라는 이름으로 흥행하고 있다. 전국의 축제는 줄잡아 2천여 개. 엊그제 사람들은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펼치는 명인의 줄타기 구경에 푹 빠져 있었다. 마을은 축제 분위기에 들떴다. 허공의 외줄 위로 사뿐 올라 아슬아슬 묘기를 부리는 명인의 몸짓. 그는 파란 가을 하늘의 나비였다. 산들바람 한 점이 살랑거렸다. 가느다란 외줄은 흔들거렸다. 그도 흔들거렸다. 모두가 흔들거렸다. 이런 걸 두고 생각과 행동이 하나 되는 혼연일체라고 했더랬다.

축제의 힘이 바로 이런 것일까. 명인은 외줄에서 박차 올라 점프했다.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번엔 양반다리로 앉은 자세에서 펄쩍 앞으로 나아간다. 묘기는 극적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관람객을 들었다 놨다 했다. 줄 위에서 무릎으로 빠르게 걷는 장면에선 함성이 터져 나왔다. 풍물패의 장단에도 흥이 돋아났다. 축제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줄타기 공연에는 스릴 넘치는 곡예만 있는 게 아니다. 풍자와 유머, 해학도 곁들여진다. 여기저기서 웃음꽃이 만발했다.

외줄을 건너는 명인의 몸짓에서 소통하는 세상을 본다. 허공에서 한 발짝씩 걸음을 뗄 때마다 소통의 눈금이 점점 또렷해지고 촘촘해지는 신기루를 본다. 공자는 일찍이 이렇게 설파했더랬다. 가까운 곳의 사람들이 즐거우면 멀리서 사람들이 오게 돼 있다고. 그랬다. 흥이 넘치는 축제마당이라면 전국 방방곡곡 어디든 달려왔다. 여행과 관광, 그리고 이벤트가 믹스된 퓨전축제!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 즐길거리 등의 흥행 요소가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는 것이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여서일까. 가을축제의 향연은 저 스스로를 설명하려 나서지 않아도 풍성한 이벤트를 말하고, 넉넉한 마음을 말하고 있다. 풍성하고 넉넉한 곳에는 사람들이 들썩거린다. 정감이 넘실거린다. 가을이라는 간판을 내건 축제가 유난히 많은 까닭일 것이다. 주제와 내용은 저마다 기발하고, 규모와 성격도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마음을 달뜨게 하는 본질은 똑같다. 비록 내용이 허접할지언정 한데 어우러져 흥을 돋우고 교감하려는 태생적 본능이 꿈틀거린다.

사람들은 그 본능적 흥을 발산하려 끊임없이 축제를 갈망하는지도 모른다. 이 축제의 계절, 마음속에 한 폭의 축제 풍경화를 그려본다.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들녘. 화사한 햇살이 날개를 펼친다. 바람이 일렁이자 누렇게 수놓은 그 무대 위에서 벼 이삭들이 춤을 춘다. 그 춤추는 흥을 형형색색으로 입혀본다. 이 가을 이런 풍경화를 그려보는 건 저 신성한 자연의 흥과 호흡하고 싶음이다. 화폭에 큰 창문이 있다면 커튼을 걷어놓고 들녘을 가까이 불러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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