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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권 박사 칼럼] '공부 잘하는 약' 어디 없나요?

임영권 한의학 박사(아이조아한의원 수원점 대표원장)



2018년 대학 수학능력시험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막판 스퍼트가 중요한 시점이 되면 당사자인 수험생은 물론 온 가족들이 초긴장 상태에 돌입한다. 초등학교 포함 지난 12년간의 노력이 대입 수능 하나로 결판나게 되니, 수능을 무사히 치를 때까지 어떤 방해물도 용납할 수 없다. 그뿐 아니다. 점수 잘 나오는 비법만 전수해준다면 어디든, 누구한테든 찾아가 비싼 값을 치를 용의도 있다. '공부 잘하는 약' 소리만 들려도 귀가 솔깃해지는 이유다. 이맘때가 되면 한의원에도 '공부 잘하는 약' 지어달라고 찾아오는 분들이 가끔 있다. 단언하지만 '공부 잘하는 약'은 없다. '머리를 맑게 하고 기력을 북돋아 기억력과 집중력을 좋게 해 학습 능률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 약'일 뿐이다. 그나저나 '공부 잘하는 약'은 어디서 유래한 처방들일까?

평생 학문에 매달렸던 공자가 침상 곁에 두고 밤마다 즐겨 복용하던 보약이 있다. 바로 '공자대성침중방(孔子大聖枕中方)'이다. 구판(龜板), 용골(龍骨), 원지(遠志), 석창포(石菖蒲)를 가루로 낸 다음 두 돈씩 술에 타서 복용하면 머리가 총명해진다고 알려진 처방이다. 우선 구판은 혈액을 길러 신(腎)을 보함으로써 경계, 건망증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으며 용골은 정신을 안정시키고 가슴 두근거림을 가라앉힌다. 고민이나 걱정이 많이 잠자리가 뒤숭숭하고 꿈을 많이 꿀 때 효험이 있다. 원지는 심(心)의 기운을 다스려 불안을 가라앉히고 기억력을 개선한다. 석창포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두뇌활동을 촉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중국 남송의 유학자, 주자가 복용한 주자독서환(朱子讀書丸)도 있다. 주자는 이 약을 복용하며 하루에 책 1천 권을 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우리 선조들도 공부한 내용을 머릿속에 오래 담아두기 위해 잠들기 전에 먹었던 약이다. <동의보감> 에는 심(心)과 비(脾)가 허손되어 건망증이 심해질 때 쓴다고 나와 있는데, 오늘날에도 건망증 치료나 기억력 감퇴에 처방되는 대표적인 약이다. 주요 약재는 복신(茯神), 원지, 석창포, 인삼(人蔘), 진피(陳皮), 당귀(當歸) 등이다. 복신은 불안, 불면, 초조한 것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진정 효과가 있는데, 복신, 원지, 석창포 등의 약재는 '총명탕(總名蕩)과 같이 수험생이나 기억력 감퇴에 시달리는 중년, 치매를 걱정하는 노인을 위한 '머리 좋아지는 보약' 처방에 두루두루 쓰인다.

'공부 잘하는 약'의 대명사격인 '총명탕'이 수험생 부모들이 많이 찾는다는 처방이다. 총명탕은 중국 명나라 때 궁중의였던 공정현이 만든 처방으로, 그가 집필한 <종행선방(種杏仙方)이라는 의서에 수록되어 있다. 주로 기억력 감퇴와 건망증 등을 치료하는 데 쓰여 왔다. <동의보감> 내경편에서는 총명탕이 '다망(多忘, 건망증)'을 치료하며 오래 복용하면 하루에 천 마디를 외울 수 있다고 소개한다. 심장의 기운을 잘 소통시켜 정신을 맑게 하고 심신을 편안케 하며, 비위 기능을 북돋워 소화능력을 좋게 한다고 설명한다. 오늘날에도 총명탕은 주로 학습능률 및 기억력 향상을 위한 처방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기억력을 감퇴시킨 흰쥐에서 총명탕이 학습과 기억력을 유의성 있게 회복시킨다는 것이 다양한 연구 논문을 통해 보고된 바 있으며, 뇌 손상 및 알츠하이머 치매와 관련한 연구에서도 앞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결과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총명탕이 '공부 잘하는 약'으로 마케팅 되어 수험생과 그 부모들을 현혹시킨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총명탕은 머리를 맑게 해 집중력과 기억력 향상시켜 결과적으로 학습 능률을 올릴 뿐이지, 저절로 성적이 올라가는 약이 아니다. 몸에 이로운 약은 그 사람의 건강 상태나 체질에 따라 효능이 있는 약재를 가감해 허한 오장육부를 보하면서 전반적인 기력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총명탕 역시 학습 능률을 올리고 공부 체력을 길러주는 것에 주안점을 둔 처방인 만큼, 공부는 열심히 하는데 그에 비해 성적이 안 나오는 아이, 시험 기간만 되면 유독 공부가 잘 안 된다는 아이, 공부하는 중에 자꾸 집중 못하고 딴짓하는 아이라면 도움이 될 수 있다.

치료를 받은 사례를 보면, 미국 12학년(한국의 고3에 해당) 남학생이 내원을 했는데, 매우 성실하고 모범적인 학생이고, 어릴 때부터 유학을 하여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실력을 갖고 있었다. 다만 이 학생은 효심이 남달라, 자기가 미국에서 매우 좋은 성적을 거둬야 된다는 중압감이 큰 까닭에 특히 영어시험만 보면 집중이 되지 않아 글을 못 읽는 상황이 반복되어 시험에 대한 공포까지 생길 정도여서 진맥을 하게 되었다. 평소 겁이 많고, 기력이 저하된 심담허겁(心膽虛怯)증의 환아여서 총명단으로 처방하였고, 2개월 복약하는 중에 마음이 편해지고 시험에 집중할 수 있게 되어 제 실력을 발휘하여 꾸준히 진료를 받고 있다.

수학능력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 갈수록 수험생들의 심리적 부담은 커지고 오랜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체력 고갈도 만만치 않다. 아이들의 불안감을 가라앉히면서 학습 능률과 공부 체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부모도 조금만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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