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글로는 안 되나요?
"선번(Sunburn)을 예방해야…", "쿨링 효과에 톤업 효과까지 있어서…", "럭셔리한 분위기에 디테일을 더하고…"
하루에도 수십통씩 보는 문장들이다. 패션과 뷰티, 아니 의류와 화장품을 담당하는 기자에게 가장 번거로운 일 중 하나는 바로 쓸 데 없는 외국어를 한국어로 바꾸는 일이다.
각각의 업체에서 기자에게 보내는 메일이 하루 평균 약 100통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중 80%는 '솎아내기' 작업을 해야만 한다. 기준은 하나다. 한국어로 바꿨을 때 의미가 전혀 통하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다.
외국어를 남발하는 것은 오히려 편하다. 과한 번역체는 문장을 새로 고쳐써야 하기 때문에 더욱 괴롭다. 3분이면 고칠 수 있는 분량인데 온갖 번역체를 잡아내다보면 10분도 순식간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일정이 무척 바빠 자료 처리에 '공 들일' 시간조차 없던 날이었는데, 외국어와 번역체로 중무장한 원고지 8매 분량의 자료가 왔다.
각 잡고 앉아 열심히 고쳐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만한 시간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홍보팀에게 전화를 걸어 해석을 부탁했다. 서로가 한국어를 쓰고 있고, 한글로 된 자료를 보고 있는데 해석을 요청하는 머쓱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홍보팀에게 이러한 문제로 전화를 걸었던 것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후 또 다른 관계자와 밥을 먹다가 우연찮게 이 문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돌아온 답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관계자의 말을 보기 편하게 정리하자면 패션·뷰티, 아니 의류·화장품 업계의 고질적 관행이란 것이다. 한글로는 명확하게 표현이 안 되거나, 자연스레 순화할 수 없는 단어가 많다는 점도 이유다.
하지만 우리가 발 붙인 이곳은 한국이다. 기사에서 한글과 영어 표기가 나란히 있을 땐 한글을 앞서 붙여주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동사무소는 주민센터가 되고, TV 방송에서마저 외래어가 무분별하게 남발되는 사회에서 한글의 입지는 자꾸만 좁아지고 있다.
지키는 것도 하나의 힘이다. 어색한 상황에 익숙해져선 안 된다. 이제 한 번쯤 다시 되돌아 볼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