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나원재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혐의를 확인하고,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 개정 이후 첫 번째 제재 절차를 밟는다. 내용의 경중에 따라 총수일가의 검찰 고발조치도 가능해 동일선상에 오른 기업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현대그룹의 관련 혐의를 확인하고, 이르면 4월 회의를 열어 현대그룹에 대한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한다. 이후 공정위는 한화, CJ, 하이트진로에 대한 동일한 조사에 착수한다.
[b]◆신설된 '23조의2'에 업계 관심 집중[/b]
2013년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서 총수일가의 부당한 이익을 금지하는 내용이 신설됐다. 총수일가의 부당한 이익이 확인되면 공정위는 관련 내용을 토대로 검찰 고발까지 가능하다.
앞서 2013년 8월 개정된 공정거래법은 이듬해 2월 시행이 예정돼 있었지만, 1년 유예기간을 두고 2015년 2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이번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 혐의 조사 착수는 이후 3개월부터 시작됐다.
눈여겨 볼 대목은 공정거래법 제5장 23조의 2란 새로 붙은 조문이다. 여기엔 총수일가의 사익편취와 일감 몰아주기 등을 금지하고 있다.
특수관계인 등을 포함한 총수일가의 부당한 이익 제공금지가 명시됐고, 거래단계 중간에서 실질적인 역할 없이 수수료만 챙기는 관행을 규제하는 근거가 포함됐다.
2013년 이전 공정거래법은 계열사 간 부당지원을 금지했다면 이후 개정안은 회사 간 거래를 통하지 않은 총수일가 개인에 대한 지원까지도 제재 가능하다. 이익을 가로채는 행위도 규제 대상이다.
다만, 개정안은 기업의 효율성 증대, 보안성, 긴급성 등 거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는 예외로 판단했다.
[b]◆현대그룹, 첫 제재받을 듯[/b]
이와 관련, 공정위는 현대로지스틱스와 현대증권이 공정거래법을 어겼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심사보고서를 21일 현대그룹에 보냈다. 이는 최종 처분을 밟는 과정으로, 제재가 확정되면 첫 번째 시정조치 사례가 된다.
심사보고서에는 현대증권이 복사기를 빌려 쓰며 HST란 회사를 중간에 두고, 이곳에 수수료와 수익을 몰아준 혐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HST는 현정은 회장의 매제 변찬중씨를 비롯한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총수일가의 지분이 95%에 달한다.
현대로지스틱스도 총수 일가가 10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운송지원업체 쓰리비를 대상으로 동일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대로지스틱스는 롯데그룹에 매각됐지만, 혐의가 발생한 시점은 현대그룹 소유여서 조사 대상이 됐다.
혐의가 확인되면 해당 과징금은 물론, 총수와 총수 일가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을 맞을 수도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특수관계인이라고 해도 총수일가가 포함된 개정안에 따라 과징금과 시정명령은 할 수 있고, 이후 검찰고발까지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관계자는 "공정위의 심사 보고서를 면밀히 검토해 의견서를 통해 잘 소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법원은 지난 10일 SK그룹 내 일감 몰아주기 제재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앞서 2012년 SK그룹의 내 SK텔레콤을 포함한 7개 계열사는 SK C&C와 시스템 유지·관리 보수 계약을 체결하면서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일감을 몰아줬다는 혐의를 받아 총 346억6100만원의 과징금을 받았다.
당시 공정위는 이 사건 조사과정에서 발생한 SK씨앤씨와 소속 임직원들의 조사방해 행위에 대해서도 총 2억9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서비스 성격이 다양한 SI(시스템통합) 업계 특성 때문에 유지보수 비용 등을 일률적으로 상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SK그룹 사례는 공정거래법이 개정되기 이전 문제이고, 총수일가의 사익편취와는 또 다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공정위가 이번 행보를 눈여겨봐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