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나원재 기자] 지난해 12월초 SK텔레콤이 공정거래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에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 심사를 신청한 이후 180일이 넘게 지났다. 당초 심사 기간인 90일의 배가 넘는 시간이 하염없이 흐른 형국이다.
공정위 심사 이후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부의 승인과 최종 결정이란 절차가 남았지만 지체되는 시간에 이를 지켜보는 시선도 초점을 잃고 있다.
통신·방송업계 간 첫 기업결합 심사라서 보다 객관적이고 철저한 판단을 요하지만, 관련 업계는 이제 시장 정체를 우려하기 시작했다.
[b]◆'2015년 12월에 멈춘 시계'… 산업 올스톱[/b]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번 M&A 심사가 예상 외로 길어지면서 국내 미디어 업계가 투자 위축 등을 우려하고 있다. 공정위 심사 지연으로 통신업계 간 비방전이 난무하고 CJ헬로비전의 사업이 정지됐으며 그 여파로 통신·방송업체들에 장비를 공급하는 중소기업들까지 고사위기에 직면하는 등 통신·방송 산업 전체가 급격한 경쟁력 저하와 분위기 침체국면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다.
정재찬 공정위원장은 이러한 우려에 대해 "과거 유선방송사업자 간 심사가 1년 이상 걸린 경우도 있고, 일부는 2년 반이나 걸린 적이 있다"며 심사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관련 업계는 이러한 입장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통신·방송 업계가 기존 사업과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면서 활로를 찾아야 하지만 정부의 허가 문제가 불확실한 탓에 어쩔 줄 모르고 있다는 판단이다.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인 CJ헬로비전 외 케이블TV 기업들도 정체된 시장 분위기를 과감한 결단으로 이겨내야 하지만 이 또한 발목을 붙잡히고 있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소비자를 생각한다면 이번 M&A의 주무부처인 미래부나 방통위의 심사가 보다 면밀하게 이뤄져야 하지만 첫 단계부터 삐걱거려서야 되겠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제는 공정위의 빠른 판단이 있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중론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M&A 심사 기간이 길어질수록 통신·방송 업계의 불확실성이 커져 산업 개편이 지연될 우려가 있다"며 "통신·방송 산업 구조 개편과 소비자 후생 증대를 위해 해당 건을 조속히 처리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꼬집었다.
[b]◆"관련 산업 성장동력 상실, 공정위 빠른 결정 필요"[/b]
관련 학계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공정위의 더딘 심사가 기회비용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정부가 조속하고 빠른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으니 관련 업계 또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냥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케이블TV 사업자의 경우 동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사업자끼리 연합해 대형 사업자를 만드는 등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하지만 정체된 상태"라며 "사업자가 팔겠다고 나섰는데 결정이 안 되니 그 다음 사업자도 관망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공정위뿐만 아니라 방통위의 평가와 미래부가 최종 평가를 하는 연결 프로세스에서 공정위는 조건을 붙이고 반경쟁 여부를 따지면 되지만, 이게 늦어지니 전체가 늦춰지고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정부 상황이 복잡해 보이진 않고,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지체되고 있다"며 "총선도 끝났을 뿐더러 이미 충분히 시간을 소비했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김성환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도 공정위의 빠른 결정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공정위의 심사는 어찌 보면 테크니컬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절차와 기준에 따라 심사만 하면 된다"며 "심사기간 내 방송공익성을 생각한다면 미래부와 방통위가 꼼꼼하게 따져야할 시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김 교수는 "공정위 말마따나 이번 통신·방송 간 첫 기업결합 사례라면 이종산업 간 결합이기 때문에 경쟁제한성 측면에선 별로 볼 게 없다는 얘기가 된다"며 "결국 공정위의 입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서로 다른 사업이기 때문에 경쟁제한성이 크게 없다는 게 김 교수의 판단이다.
그는 "공정위를 거쳐 미래부와 방통위로 내용이 넘어가면 또 다른 이슈가 있을 것"이라며 "결합상품은 모호한 이슈고, 이 건은 미래부에서 더 자세하게 봐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