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영등포역 인근 아파트에 거주하는 김세인(39·여)씨는 요즘 관리비 고지서가 나오는 날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겨울엔 보일러를 종일 사용해 가스비가 많이 나온다는 생각은 이해가 됐지만 겨울 못지않은 전기료가 여름철 관리비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에어컨 말곤 딱히 없다. 김씨는 "아이 둘이 있어 한낮이나 저녁에 잠깐 사용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이 나와서 부담된다"며 "전기 누진제 때문인 것 같은데 이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하소연한다.
#2. "아기가 어려서 4~5일 정도 벽걸이 에어컨을 사용했는데 얼마나 사용했다고 평소보다 2배 넘은 전기세가 나오더라고요. 주변에서 누진제 얘기를 많이들 하지만 우리 집은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남 얘긴 줄로만 알았는데 당장 오늘부터 에어컨을 켜야 할지 고민되네요."
수원에 거주하는 황숙희(35·여)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황씨는 "평소 7~8만원이 전기세로 나왔는데 지난달부터 18만원이 넘게 나왔다"며 "누진세가 이렇게 무서운 건지 몰랐다"고 토로했다.
#3. 경기도 안성에 사는 박진술(50·남)씨는 "지하수 쓰는 집 중 가정용 전기로 지하수 끌어올리는 경우엔 전기세가 한 달에 20~30만원 나오지만, 농업용으로 지하수 끌어올리면 10만원 이하로 나온다"며 "가정용 전기세가 너무 비싼 거 아니냐"고 울분을 토하고 있다.
전기 누진세에 서민들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지속되는 폭염에도 이젠 에어컨을 켜기가 무서울 정도다. 무더운 여름만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전기 누진제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게 이들의 중론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마음을 정말 헤아리지 못하는 건지 기존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누진제는 부자감세란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아직은 개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씨는 "정부는 전기료를 내리면 우리가 마구잡이식으로 전기를 사용하라 것이란 얘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건 얼토당토 않는 얘기일 뿐이다"고 꼬집었다.
박씨는 이어 "누진제를 만지는 정부 담당자들도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본다면 이렇게 고집을 피울 수 없을 것이다"며 "가정에서 아이들이나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무더운 여름 뜨거운 바닥에서 에어컨을 두고 선풍기로만 살아간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봤으면 좋겠다"고 일갈했다.
이런 와중에 한국전력 직원들의 외유성 해외연수가 도마에 올라 논란이 되고 있다. 매년 실적잔치를 벌이는 한전이 누진세로 거둔 이익을 방만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9일 일각에 따르면 한전은 세계 에너지 산업 현장을 체험한다는 명목으로 1인당 900만원가량 소요되는 연수 일정에 관광과 견학을 포함시켰다.
한전은 내부 공고를 통해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수자 100명을 선발해 휴가철인 8월 말까지 20명씩 5개조로 일정을 나눠 소화할 예정이다.
하지만 계획에는 해외 석학의 특강과 구글, 테슬라 등 현지기업 탐방, 워크숍이 전부고 이외 대부분은 관광일정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선발된 인원 대부분이 간부급 직원으로 구성된 점도 의심을 사고 있다.
이에 대해 한전 측은 "글로벌 트렌드를 읽기 위한 것으로, 신입과 퇴직을 앞둔 직원을 묶는 건 의미가 없다고 본다"며 "30대 이상 10년차 이상 직원 위주로 선발하다 보니 오해가 생긴 것이다"고 전했다.
한전의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결국 누진제로 실적을 올린 한전이 비효율적인 경영을 한다는 의심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