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는 잡초처럼 이렇게 막 자라나니까 누구든지 다 뽑아 먹을 수 있어.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다 뽑아 먹고 건강해질 수 있어. 미나리는 원더풀이란다."
최근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으로 세계를 들썩인 배우 윤여정 씨가 영화 '미나리'에서 한 대사이다. 영화가 한국인의 미국이민사를 표현한 이야기인 만큼 이 대사에는 많은 이야기가 함축돼 있다. 미나리는 주로 물가나 습한 곳, 혹은 더러운 물을 가리지 않고 자란다. 이에 '미나리'를 통해 이민자로서 한국인의 강한 생명력에 대해 표현한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영화 '미나리' 속 이야기처럼 고난과 역경 끝에 희망을 찾았을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달 12일 공개한 '이주노동자의 노동 여건 및 정책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비전문취업(E9), 방문취업(H2), 재외동포(F4)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 시간은 50시간이다. 이 가운데 연장근로까지 포함해 노동 시간이 법정 기준(주 52시간)을 초과한 비율은 24.6%였다.
국적·성별·직종·취업 여부를 고려해 선정한 비전문취업 노동자 692명, 방문취업·재외동포 노동자 735명 등 총 1427명을 면접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20.7%는 주중 노동 시간이 60시간을 넘긴다고 밝혔다. 체류자격별로 비전문취업 노동자의 23.9%가 일주일에 60시간 이상 일한다고 답해 노동 시간이 가장 길었다.
단순하게 같은 기간 대다수 한국인 근로자가 주52시간 제도 적용을 받는 점과 비교하면 외국인이 열악한 환경에 놓인 셈이다. 이에 2011년 설립한 이주노동희망센터는 노동자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를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아 송은정 이주노동희망센터 사무국장과 만나 이주노동자에게 필요한 주요 지원과 앞으로 지향하는 방향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인터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서면으로 진행했다.
◆시작은…이주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운동
송은정 사무국장이 말한 이주노동희망센터의 시작은 '이주노조 활동을 하다가 강제추방 당한 활동가로부터'였다. 한국사회 노동 문제에 맞서 저항하다 강제추방 당한 이주노조 활동가들이 '이주 노동'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위한 방안 가운데 하나로 현지에서 학교 설립을 한 게 사업의 시작이었다.
이에 대해 송 국장은 "고용허가제 송출국의 교육사업 자체에 목표가 있었다기보다는 강제추방 당한 활동가들이 방글라데시에서 학교를 통해 자리를 잡고 이주 노동을 고민하는 사람들과 이주 노동을 하고 돌아온 노동자들과 그 사회에서 '사회운동'을 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 사업에서 출발한 이주노동희망센터는 다양한 국내사업도 하고 있다. 매해 5월 1일 노동절을 앞두고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행동', 지난해 연말 캄보디아 이주여성 노동자 '속헹' 씨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사망한 사건과 관련 이주노동자 기숙사 온·오프라인 사진전, 이주 노동 영화제와 서울이주민예술제 등 문화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송 국장은 이들 사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 "이주노동자를 직접 지원하는 것도 당장 어려움에 부닥친 개인에게 큰 의미가 있겠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처해있는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활동들이 필요하다. 한 단체의 힘만으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주노동자의 극단적인 사례만을 부각하지도 않고, 시혜적으로 사업을 하는 것도 지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송 국장은 문화 사업과 관련 "사진전을 연 것도 많은 시민들이 이주노동자 숙소 문제를 알아야 한다는 심정이었다. 고무통을 묻어놓고 천막을 가려놓은 수준의 이주노동자 화장실 사진 액자 아래에 어떤 시민이 '미안합니다'라고 포스트잇을 써 붙였는데, 그런 마음이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문화 활동을) 하는 이유 또한 더 많은 시민들이 이주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전했다.
◆관심에서 공감까지…목표는 '의미 있는 지속 가능함'
최근 코로나19 상황으로 한국 사회에 인종차별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올라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도 관심을 받게 됐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 존재함에도 사실상 '없는 존재'처럼 여겨진 이주노동자가 아이러니하게 코로나19 상황으로 주목받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송 국장은 "거리에서 이주노동자 기숙사 사진전을 하면 항상 해당 지역 경찰들이 나온다. 사진전이 시작하기도 전에 경찰들이 사진들을 보면서 문제의식을 많이 공감하더라"며 "사진전 관련 기사에 공감한 국회의원이 연락이 와서 기숙사 문제 토론회에 공동주최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주노동자 기숙사 사진전을 최근에 하니까 사무실로 상담 전화, 원고 청탁, 강의 의뢰 등이 많이 온다"고 말했다.
송 국장이 최근 기억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관심'은 미등록 이주민 자녀의 어린이집 입소 과정에 담당 공무원이 협조를 안 해준다는 상담 과정에서 겪은 일이었다. 이와 관련 미등록 아동의 경우 공무원이 고유식별번호를 생성해 보육통합정보시스템에 등록하도록 돼 있다. 상담 결과 관련 협조는 잘 이뤄졌고, 뜻밖의 성과도 거뒀다고 송 국장은 말했다.
"상담 전화를 한 분이 미등록 아동을 어린이집에 입소시키고 싶을 정도로 호의적인 분이었음에도 계속 '불법체류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시더라. 그래서 마지막에 통화할 때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불법체류자' 대신 '미등록 이주민'이라고 표현하는 게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더니, 정말 좋은 단어라며 지역 어린이집 원장에게 다 공유하겠다고 했다. 뜻밖의 성과였죠."
앞으로 이주노동희망센터는 사진전이나 영화제 등 문화사업뿐 아니라 이주노동자의 권리 보장 차원에서 관련법 개정에도 나설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송 국장은 "법 제도 자체가 차별적이어서 사람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다. 이주노동희망센터는 비정규직보다 더 낮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이 확보되는 날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립 10주년을 맞은 이주노동희망센터는 올해 하반기 '이주노동 운동 발전을 위한 심포지엄'이나 '이주노동자 희망상' 등 기념 사업도 계획해 추진할 예정이다. 송 국장은 이 가운데 이주노동자 희망상에 대해 "노동사회 운동을 하고 있는 이주민 활동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라며 "이주노동자를 사업 대상으로 보지 않고 이주노동자를 문제 해결의 주체로 세워나가기 위해서 이주민 활동가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만든 것"이라고 소개했다.
끝으로 송 국장은 이주노동희망센터의 목표에 대해 '의미 있는 지속 가능함'이라고 말했다. "올해 사업 계획으로 '10주년 기념 발전방안 마련'이 있었다. 그런데 계속 고민하다 보니까 '발전'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확대', '전진' 보다 장기적으로 '의미 있는', '지속 가능함'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더라. 그래서 목표는 '의미 있는 지속 가능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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