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는 사회상을 반영한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도 그 중 하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상황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숨돌릴 틈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지친 도시인들이라면 꼭 한번 가봐야 할 곳이 있다. 안산에 숨겨진 보물 '연희숲속쉼터'다. 인구밀도가 높아 어딜 가도 사람이 많은 서울이지만, 이곳은 아직까진 널리 알려지지 않아 한강공원이나 서울숲처럼 인파에 치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고즈넉한 산책을 즐기기 안성맞춤인 공간인 셈이다.
서대문구는 2000년 3월 31일부터 2008년 1월 16일까지 안산도시자연공원 부지 보상을 추진하고, 연희숲속쉼터 조성사업 실시설계 용역에 들어갔다. 2010년 8월 20일부터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 8월 31일 완공하고, 2011년 9월 2일 연희숲속쉼터를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사업비로는 19억8000만원(시비/조경 14억9000만원, 건축 4억9000만원)이 투입됐다.
◆고즈넉한 주민 쉼터
비가 오락가락 내리는 지난달 27일 서울 연희숲속쉼터를 방문했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 4번 출구로 나와 서대문03번 마을버스를 타고 하나로마트·동신병원에서 하차해 홍연교 밑으로 내려온 뒤 안산 방향으로 걷다 보면 쉼터로 가는 길이 나온다.
연희숲속쉼터 진입로에는 물레방아가 설치됐다. 강원도 정선군 화암면 백전리에서 100여년 전부터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전통 물레방아를 재현한 것으로, 물이 떨어지는 힘으로 바퀴가 돌아가는 동채 방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구는 설명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1996년 9월 강원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백전리 물레방아는 물이 잠시 고였다 떨어지는 구유가 56개로 구성됐고, 물레 크기는 지름 250cm, 폭 67cm다. 보(둑을 쌓아 흐르는 냇물을 가두는 곳)에서 물을 끌어다 물레방아를 돌리는 데, 보 위쪽으로 용소(지하수가 솟아나는 곳)가 있어 물을 공급받기 좋은 조건을 갖췄다고 한다. 물레방아 옆에는 앞면 2칸, 옆면 1칸 규모의 나무판자로 짜인 방앗간이 있었다.
마포구에 사는 최모 씨는 "코로나 때문인지 동네 공원에 사람들이 바글거려 갈 엄두가 안 나 한가진 곳으로 왔다"면서 "캠핑가서 불멍(불을 보며 멍을 때리는 일)하는 걸 좋아하는데 방앗간 앞에서 물멍(물을 보며 멍하게 있는 것)하면 딱 맞겠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물레방아, 장독대, 돛단배 등이 한곳에 모여 있어 사극 세트장 같다"면서 "4단계 끝나면 친구들이랑 같이 또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연 품에서 마음 치유
물레방앗간을 지나 연희숲속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쉼터는 위에서 보면 호박잎 모양처럼 생겼다. 북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정자, 체력단련시설, 허브원, 벚꽃마당, 잔디마당, 벚꽃책방, 안산공원 관리사무소, 오름카페가 차례로 들어섰다.
허브원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동그라미모양, 세모모양, 부채꼴모양으로 펼쳐졌는데 88올림픽 때 카드섹션하는 것처럼 보였다.
직장인 강모 씨는 "백신휴가를 쓰고 집에만 있기 아까워 놀러 나왔다"면서 "인스타그램에서 친구들이 올린 제주도 여행간 사진을 보고 부러워 배 아팠는데 연희숲속쉼터에서 힐링하고 가게 돼 다행"이라며 머쓱하게 웃었다.
강 씨는 "꽃을 보고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큰 위안이 된다"며 "주변에 코로나 블루(우울증)로 힘들어하는 사람 있으면 가보라고 추천해야겠다"고 말했다.
연희숲속쉼터에는 언뜻 보면 수국으로 보이는 '큰 꿩의 비름'과 보라색 민들레 모양의 '아스타', 작열하는 태양 같은 '란타나' 등 사람들에게 생소한 식물뿐만 아니라 국화, 자주천인국(에키네시아)처럼 흔하게 볼 수 있는 꽃까지 다종다양한 식물들이 식재됐다.
허브원 구경을 마치고 벚꽃마당으로 올라갔다. 시민들은 홍은2동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벤치에 앉아 휴식을 즐겼다. 벚꽃마당 북쪽에는 운동기구가 설치된 소규모 체력단련장이 마련됐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이 등허리 지압기에다 어깨와 등을 대고 좌우로 움직이며 뭉친 근육을 풀었다.
체력단련장 옆에는 소설가 만우 박영준 문학비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문학비는 구석기시대 주먹도끼처럼 끝 부분이 뾰족한 타원형으로 만들어졌다. 만우 박영준 문학비건립위원회가 2016년 7월 만우 서거 40주기를 기념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만우는 선량한 인간상을 추구해온 소설가로, 대표작으로는 '모범경작생', '목화씨 뿌릴 때', '아버지의 꿈' 등이 있다. 문학비엔 "선생의 소설 쓰기는 일제강점기에서 해방공간을 거쳐 산업화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와 맥을 같이 한다. 그의 작품 속 농민들은 압제와 수탈 속에서도 삶에 대한 적극성과 진취성을 잃지 않았다. 선생은 전쟁의 참화 한가운데 던져진 인간의 삶도 넉넉한 감동의 소재임을 보여줬다"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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