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대단하다 싶었어요. 나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요즘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이 용기도 있고 대담하다 그런 생각을 해요."
tvN '꽃보다 할배'에 출연할 당시 배우 신구가 프랑스의 어느 민박집에서 홀로 배낭여행을 다니는 한 젊은이에게 한 말이다. 젊었을 때 나 홀로 여행 다닐 기회가 갖고 싶었고, 지금은 그럴 수 없음에 아쉬움도 묻어나는 의미도 함축된 표현이다.
그 말처럼, 대한민국에서 노인들의 여행 현실은 '패키지'로 요약된다. 3년째 이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위기 가운데 한국인은 해외가 아닌 국내로 눈을 돌렸고, 다양한 여행지도 개발됐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부터 자차로 숙박까지 하는 '차박'까지, 지금 한국은 여행할 곳 천지다.
하지만 '노인을 위한 여행'은 부족하다. 65세 이상 고령자가 불편 없이 여행 다닐 만한 곳부터 찾기 쉽지 않아서다. 더군다나 관심 두는 분야에 대한 식견과 경험을 높이기 위해 특정 지역으로 놀러 가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이는 통계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통계청이 지난 2020년 9월 공개한 '2020 고령자통계'를 보면, 2019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의 하루에서 여가시간은 6시간 51분이다. 이 가운데 문화 및 관광은 1분에 불과하다. 여가에서 가장 많이 할애하는 시간은 미디어 이용(3시간 50분)이었다. 이어 교제 및 참여(1시간 23분), 기타(게임 및 놀이, 개인 취미활동, 자원봉사 등 50분), 스포츠 및 레포츠(47분) 등 순이다.
단순하게 통계만 보고 생각하면, 65세 이상 고령자가 문화 및 관광, 즉 여행을 못 하는 상황인 셈이다. 이에 2019년 설립한 여행대학은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국관광협회중앙회 주관으로 마련한 60세 이상 시니어에 한국 최초 여행문화 교육 프로그램인 '꿈꾸는 여행자'를 위탁 운영, 주체적인 여행에 나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메트로경제는 '여행으로 다가가 시니어들의 즐거운 여가와 행복한 삶에 기여하고 싶은 소명'으로 활동하는 정상근(39) 여행대학 대표와 만나 시니어들에 여행을 제안한 계기, 현재 주요 사업, 앞으로 목표 등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는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서면으로 진행했다.
◆80만 원으로 세계여행 끝에…"시니어의 행복한 삶에 기여하고 싶다"
정상근 대표가 "시니어의 즐거운 여가와 행복한 삶에 기여하고 싶다"는 소명 의식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군 제대 후 '80만 원'만 들고 편도 티켓으로 떠난 호주였다. 호주에서 여행경비 마련 차 아르바이트 면접에 60번 넘게 도전했고, 5개월 지난 뒤 1000만 원을 모아 1년간 자급자족하며 세계여행까지 경험에서 정 대표는 "시간이 거듭될수록 부모님에 관한 생각이 커졌다"고 말했다.
산업화, 민주화를 온몸으로 겪은 부모님 세대 덕분에 여행 다니고, 나 다운 삶도 찾을 수 있어서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80만 원으로 세계여행'이라는 책으로 누군가에게 떠날 이유와 용기를 주는 계기가 됐지만, 정작 부모님 세대는 경험이 없어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정 대표는 한국 최초로 시니어에 필요한 여행문화 교육프로그램을 정부로부터 위탁 운영하기로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빠르게 변하는 여행 트렌드 가운데 정 대표는 시니어들이 '장소'에서 '활동' 중심의 특수목적관광에 대해 선호하는 점을 알게 됐고, 이에 주목해 사업화한 것이다. 정부와 한국관광협회중앙회가 시니어 여가문화 개선, 국내관광 활성화 차원에서 정책사업을 계획했고, 여행대학은 업무협악으로 교육기회에 직접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후 여행대학은 시니어를 위한 시범사업 운영 등 민간파트너로서 관련 정책사업 전국 확대 지원에 나섰다. 정 대표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그간 시니어들의 인터뷰를 통해 특수목적관광과 같이 본인이 가진 관심사와 여행을 연결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목적을 가진 모임 여행은 여행지 중심의 테마여행보다 훨씬 활발하게 이뤄진다"고 소개했다.
이어 "여행대학은 시니어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정책사업으로 해소할 수 없는 불편을 기술로 해소하기 위해 시니어 여행모임 사업모델을 기획하고, 플랫폼도 개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션은 '마음 편히 놀고, 가장 즐거운 시간 보내도록'
정 대표는 시니어에 '마음 편히 놀고, 가장 즐거워하는 시간을 보내도록'이라는 미션에 맞춰 ▲정부 교육 위탁사업(꿈꾸는 여행자 등) ▲시니어 소비자와 직접 교류하는 소셜네트워크 플랫폼 등 영역에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다른 관광업계처럼 여행대학도 팬데믹 위기에 큰 타격을 입었지만,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는 게 정 대표 이야기다.
이에 정 대표는 "시니어 세대는 다른 세대보다 가치 있는 나눔과 탐구를 원한다. 이에 여행대학은 시니어의 의미 있는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창의적으로 나눔과 탐구를 연결하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여행, 쓰레기를 치우는 봉사 여행 등의 사례도 소개했다.
"꿈꾸는 여행자에는 35년간 수어 통역사로 일해온 분, 은퇴 후 문화관광해설사가 돼 여행 이야기를 나누는 분도 있는데, 우리는 이런 선생님의 경험과 재능을 모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여행하는 의미 있는 활동을 도모하죠. 이렇게 하면 정부, 한국관광협회중앙회와 힘을 합쳐 사회적 가치뿐 아니라 관광업계, 나아가 더 많은 기관과의 시너지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한국은 미국 '로드 스칼라'(Road Scholar), 캐나다 '시니어 디스커버리 투어스'(Senior Discovery Tours), 일본 '클럽 투어리즘'(Club Tourism) 등 해외처럼 시니어 여행사업이 다양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에 해외의 좋은 사례는 벤치마킹하고, 한국에 맞춰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매년 새로운 시도에 나서는 중이라고 정 대표는 말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고 있죠. 프랑스는 복지 개념으로 경비 일부를 지원하는 체크바캉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미국은 체계적 교육이 뒷받침되는 로드스칼라를, 일본은 개개인의 취미와 배리어프리, 커뮤니티를 중요시하는 클럽투어리즘을 통해 시니어 여행문화를 선도해가죠. 각 프로그램 모두 수십만 명 이상 참여하며 성과를 입증하고 있는데, 꿈꾸는 여행자 프로그램도 해외 좋은 사례를 한국에 맞춰 장점은 극대화하는 새로운 시도로 더욱 성장해 새로운 시니어 여행문화를 선도하리라 확신한다."
◆여행대학 앞으로 '바람'은…
정 대표는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로 불리는 베이비붐 세대 은퇴로 인한 관광산업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가 과거 세대보다 가용할 시간이 많고, 건강하면서 경제적으로 안정돼 본인을 위한 투자도 적극적일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이에 정 대표는 최근 만난 여행대학 수강생인 60대 시니어가 '정 대표, 젊은 친구들이야 나중에 코로나로 못한 여행 실컷 다니면 되지만, 우리는 지금 이 시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건강과 시간이 허락하는 내 인생의 황금기를 이렇게 보내는 게 너무 억울해'라고 말한 점도 소개했다.
그러면서 "지난 3년간, 1000명이 넘는 시니어를 직접 만났고, 열심히 일만 했던 그들도 이제는 잘 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더 많은 시니어가 쉽고 편리하게 매일매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끝으로 정 대표는 배우 이순재가 tvN '꽃보다 할배'에서 "나이 먹었다고 주저앉아서 어른 행세하고 대우받으려고 주저앉아버리면 늙어버리는 거고, 난 아직도 한다 하면 되는 거예요"라고 말한 것처럼 여행을 망설이는 시니어에 용기도 전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거부감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행을 갈망하고 그리워하고 있다. 특히 은퇴한 시니어의 경우 삶 자체가 여가인 경우가 많고, 그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 행복한 인생을 사는 방법이다. 여행은 행복을 주는 최고의 활동인 걷기, 놀기, 말하기, 먹기 등을 포함하는 종합선물세트와 같다. 여행을 통해 인생 2막, 새로운 행복을 찾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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