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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새벽을 여는 사람들]화마가 덮친 마을…영웅 그리고 천사

지난 18일 오전 8시께 찾은 강원 동해시 만우마을. 지난 4일 강릉 옥계에서 시작된 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동해로 번지면서 한 주택이 전소됐다. /양희문 기자

화마(火魔)가 덮친 마을은 처참했다. 폭격을 맞은 것처럼 사방이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지난 18일 오전 8시께 찾은 강원 동해시 만우마을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새까맣게 그을린 집들은 무너져 내려 뼈대만 앙상했다. 슬레이트 지붕은 열기에 녹아 엿가락처럼 휘어져 주저앉았다. 트럭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불에 탔다. 주민들은 피난이라도 간 듯 마을은 한적함을 넘어 을씨년스러웠다. 공허함을 메꾸는 건 코를 찌르는 매캐한 탄내뿐이었다.

 

지난 18일 오전 8시께 찾은 강원 동해시 만우마을. 트럭이 형체를 알아 보기 어려울 정도로 불에 탔다. /양희문 기자
지난 18일 오전 8시께 찾은 강원 동해시 만우마을. 강아지도 화마를 피하지 못한 듯 등이 불에 타 속살을 드러냈다. /양희문 기자

주인이 떠난 한 터전엔 강아지가 홀로 집을 지키고 있었다. 강아지의 등은 불에 타 속살이 훤히 드러났다. 며칠 째 사람을 보지 못한 건지 꼬리를 흔들며 새까만 발로 달려들었다. 잿더미 속 그을리고 뒤틀린 집기와 용품이 과거 이곳이 생활터전이었고, 강아지의 집이었음을 짐작게 했다.

 

이날은 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 봄비마저 야속하기만 하다. 2주만 더 일찍 와도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서다. 지난 4일 강릉 옥계에서 시작한 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동해로 번졌다. 불은 닷새간 동해안 일대 산림 4000㏊를 태우고 100명이 넘는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만우마을도 거센 불길에 휩쓸려 13가구가 불에 탔고, 동해에서만 53가구가 잿더미로 변했다.

 

김인수 만우마을 통장은 "61년 한 평생을 이 마을에서 살았는데 이런 불길은 처음"이라며 "집을 잃은 이웃들의 눈물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화마와 싸운 영웅…권영각 민노총 전공노 소방본부 강원지부장

 

지난 18일 강릉소방서에서 만난 권영각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강원지부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희문 기자

동해안 산불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울진, 삼척, 동해, 강릉 등 사방에서 불길이 시작됐고, 소방관들은 화마와 싸웠다. 강릉소방서 소속인 권영각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강원지부장도 지난 4일 강릉 성산면 산불 진화에 투입됐다. 권 지부장은 20년이 넘는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화염 속에서 대원들을 진두지휘했다. 결국 이틀에 걸친 혈투 끝에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권 지부장은 "최우선 임무는 민가로 불길이 번지지 않게 하는 것인데 다행히 성산면 산불은 잘 진화돼 우려했던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권 지부장은 27년 소방관 생활에도 불이 무섭다. 트라우마 때문이다. 1998년 가구점 화재현장에서 그는 동료 2명과 함께 고립돼 목숨을 잃을 뻔한 적이 있다. 연기가 자욱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불길 속에서 길을 잃은 것. 동료 1명은 온몸에 큰 화상을 입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권 지부장은 그를 업고 불길을 뚫고 나왔다. 이 사고로 그 또한 팔 등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그는 현장에 나간다. 두려움보단 시민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앞서기 때문이다. 대신 대원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

 

권 지부장은 "아직도 98년 가구점 화재가 생생히 기억난다. 트라우마가 절대 없어지진 않지만 소방관으로서 책무를 다하는 것 뿐"이라며 "죽을 위기를 겪고 나니 안전에 대해 더 신경 쓰게 됐고, 그 사고 이후로 같이 근무했던 동료들이 다치거나 순직한 경우가 없다"고 말했다.

 

권 지부장은 소방관들의 권익 보호에도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 민노총 전공노 소방본부가 출범했고, 그는 강원지부장으로 선출됐다. "굳이 노조를 왜 하느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는 부당한 임무 지시에 맞서고 열악한 근무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나서기로 했다. 전국 1만4000명에 달하는 소방관들도 민노총에 가입해 그의 뜻에 동참했다.

 

노조 출범 이후 소방 조직은 변하고 있다. 부당한 임무 지시를 거부한 것. 최근 소방청에서 법무부 사무관 승진시험을 응시하는 코로나19 확진자를 별도 시험장으로 이송하라는 지침이 일선 소방서에 전달됐다. 노조 측은 특정인을 치료가 아닌 편의를 봐주기 위해 법무부가 권력을 남용한다는 것으로 판단, 이를 거절했다. 또 24시간을 근무하고 이틀을 쉬는 방식인 '당비휴' 근무 도입과 관련해 소방청과 노동청과 합의하고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권 지부장은 "이번에 충남 서산에서 동해안 산불 지원 업무를 담당하던 소방관 한 분이 과로로 숨지는 일이 발생했는데 남의 일 같지가 않다"며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앞장서서 싸울 것"이라고 했다.

 

◆집 잃은 이재민들 돕는 천사…자원봉사자들

 

지난 18일 오전 11시께 동해시 망상동 국가철도공단 망산수련원. 자원봉사자들이 이재민들을 위한 점심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양희문 기자

하루 새 집을 잃은 51명의 이재민들은 동해 망상동 국가철도공단 망상수련원(임시거주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18일 오전 11시께 찾은 수련원엔 전국 각지에서 온 자원봉사자들로 붐볐다. 이들은 점심식사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손발 걷고 자원봉사에 나선 원불교 봉공회도 지난 9일부터 이재민들에게 하루 세끼를 제공하고 있다. 또 이재민들의 의류와 침구류 등을 수거해 세탁도 해주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강명권 원불교 봉공회 사무총장은 자신을 선발대라고 소개했다. 17년간 봉사를 해온 강 사무총장은 재해가 발생하면 누구보다 먼저 현장에 달려간다. 그곳에서 이재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물품이 뭔지,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한지 파악한 뒤 후발대에게 정보를 전달한다. 후발대는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 합류한다. 이번 동해안 산불 때도 그는 울진, 삼척, 동해 등 재해 현장을 돌아다니며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곳을 찾았고, 동해 주민들을 위해 힘쓰기로 했다.

 

강명권 원불교 봉공회 사무총장이 이재민들에게 줄 도시락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희문 기자

힘들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번 화마로 집을 잃은 할머니 한 분이 하루 종일 울고 계셨다. 기초수급자에 자식들도 도움 줄 형편이 안 돼 막막하신 거였다"며 "이런 분들을 외면할 순 없다. 큰 도움이 아닐지는 모르더라도 작게나마 희망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원불교 봉공회는 동해안 산불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위해 모금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모여진 돈은 4월 초 임시 조립주택에 입주하는 이재민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는데 사용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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