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함께하는 선배 기업가들과 스타트업 후배들 '무한 멘토'
'규제'로 혁신막는 정치권·관료사회에 '우물안 개구리' 일침
"대학 주인은 학생 아닌 재단과 교수…인재양성 외면, 화석화"
"국가가 1년 단기과정 통해 '디지털 인재' 양성, 신속 공급해야"
"젊은이들이 희망이 없으면 국가도 희망 없는 것 아니냐. 희망없는 젊은이를 만드는 것도 결국은 기성세대 책임이다. 창업해 도전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외롭지 않게 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스타트업을 창업한 후배들이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길을 내주고 있는 한 선배기업인이 있다.
자신도 갈피를 잡지못하고 고생했던 시절이 있었던 만큼, 후배들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도전과나눔' 이금룡 이사장(사진). 77년 당시 삼성그룹 공채 17기로 입사해 유통물류 부장, 인터넷 사업부장(이사) 등을 역임한 후 옥션 사장을 맡으면서 국내의 대표적인 인터넷 쇼핑몰로 키우고, 이후엔 대표이사로 인터넷 지불결제 회사인 이니시스 창업에 관여했던 그는 우리나라 유통·인터넷 분야의 대표적인 1세대 인물로 꼽힌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초대 회장,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등을 맡은 후 지금은 기업들의 글로벌 전자상거래를 지원하는 코글로닷컴 회장 직함과 함께 사단법인 도전과나눔을 이끌고 있는 그다.
창업한 후배들은 '도전'과 '기업가정신'을, 회사를 성공시킨 시니어 선배들은 '나눔'이 필요하다는 뜻에서 이름도 그렇게 지었다.
"나 혼자 하기엔 벅찬 일이라 뜻을 같이하는 선배 기업인들을 같이 모셨다. 매달 셋째주 수요일에 열리는 조찬 포럼에서 선배들은 '나눔 테이블'을 위해 기부를 하는 동시에 멘토를 하고, 창업한 후배(멘티)들은 포럼에 무료로 참석해 기업가정신을 배우고 네트워크를 쌓는다. 후배 기업들이 IR을 통해 투자 등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이다."
삼성물산 회장, 한국마사회 회장을 역임한 현명관 회장, 다산그룹 남민우 회장, 자강산업 민남규 회장, 조인㈜ 한재권 회장, ㈜지누스 이윤재 회장, 서린바이오사이언스 황을문 회장, 삼구아이앤씨 구자관 회장, 주성엔지니어링 황철주 회장이 나눔 테이블을 통해 후배들을 위한 멘토로 나선 선배기업인들이다.
스타트업 창업자 등 도움이 필요한 후배들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운영하고 있는 청년창업사관학교 졸업생, 대학 창업지원단이나 청년기업가정신재단 등의 추천을 받아 멘토들이 직접 뽑는다.
2018년 7월부터 시작한 조찬포럼에는 지금까지 이들 선배 기업인 뿐만 아니라 스타트업에서 성장한 기업인, 재계·학계·금융계 인사, 장·차관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인사 50여 명이 강연자로 나섰다.
"스타트업을 하는 젊은이들의 치솟는 에너지와 실력을 보면 안심이 된다. 그러나 한편으론 철옹성 같은 (기업활동을 막는)규제를 보면 걱정스럽고 숨이 막힌다."
이 이사장은 지난 21대 총선에 앞서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가칭 '규제개혁 비례당' 창당을 주도했다. 창당을 통한 국회 입성이 결국 무산됐지만 그가 적극 참여한 데는 분명한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나라의 운명은 결국 '제도'에 달려있다. 사회주의인 북한에서 유니콘 기업이 나올 가능성이 없는 것도 바로 제도 때문이다. 한국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과거 '패스트 팔로우 시대'엔 '진흥'이 절실했다. '○○○ 진흥법'이 수 없이 만들어졌고, 관련 단체도 우후죽순 생겼다. 그런데 지금은 '퍼스트 무버 시대'다. 진흥이 맞지 않는다. 예전에 만들어진 단체들은 퍼스트 무버를 위한 '파괴적 혁신'을 반대한다. 포지티브(Positive) 입법 체계에선 법에 나와 있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걸린다. 금융, 헬스케어, 바이오 등에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들이 사회 혁신가가 될 수 밖에 없는 것도 이때문이다."
그런데 제도는 사람이 만든다.
그는 규제나 제도를 양상하는 대표적인 집단인 정치권과 관료 사회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 이사장은 "예산, 법, 제도를 모두 쥐고 있는 세력 중 하나가 정치권이고, 또다른 하나가 관료다. 이 가운데 정치는 100% 내수산업이다. 정치는 글로벌로 공유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우물안 개구리'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표를 의식해 나라안 이익단체들의 눈치를 볼 지언정, 미래 신산업 규제 개선을 통해 혁신을 최우선 가치로하는 나라밖 일에는 정치권이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관료도 마찬가지다. 과거시험을 봤던 조선시대나 행정고시를 보는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과거시험은 사서삼경을 암송하거나 제술을 통해 관료를 뽑았는데 시대가 변한 지금도 수 많은 수험생들이 같은 교범으로 공부하고 시험을 봐 공무원이 된다. 여기서 지적호기심이 생겨날 수가 없다. 그러니 파괴적 혁신을 주도할 사람도 없는 것이다."
그는 인재를 육성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갖고 있는 대학과 교수 사회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 이사장은 "지금의 대학은 주인이 교수와 재단이다. 학생이 아니다. 대학은 이미 화석화됐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대학의 최대 고민은 학생을 잘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줄어드는 학생들의 빈자리를 채우는게 최대 목적이다. 기업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공과대학은 기업, 공장과 항상 연결돼 있어야 한다. 특히 우수 인재를 이용하기 쉽지 않은 중소기업들은 대학 교수들을 CTO로 영입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학에만 머물고 있는)교수들이 이를 싫어한다. (공대는)파워포인트로 학점 따는 곳으로 변질돼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이 이사장은 대학은 대학대로 놔두고 4차산업혁명에 걸맞는 맞춤형 인재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협단체 등에서 별도의 과정을 만들어 양산하는 체제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조선, 철강, 건설, 자동차 등 과거 산업화 과정에서 필요했던 인력을 속성으로 키워 산업현장에 빠르게 공급했던 전례가 있었던 만큼 지금도 같은 방법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인공지능(AI)시대다. AI는 판단(예측)기능, 비서기능, 맞춤기능, 스마트공장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그런데 AI는 데이터가 가장 중요하다. 이 데이터 수집을 위해선 자바, C언어 등 개발자가 필요하다. AI가 현재 모든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지만 개발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1년 짜리 데이터 언어 전문가 과정을 만들어 인력을 신속하게 공급해야한다. 디지털 분야의 마케팅 전문 인력도 수요는 많은데 사람이 없다. 교육과정은 2년은 너무 길고, 1년이 적당하다. 교육비는 국가에서 부담해야한다."
이스라엘의 예를 들어 군 복무 인력을 디지털 인재로 키우는 것도 아이디어로 내놨다. 가칭 '국방디지털학교'를 만들어 과정을 거친 인재를 사이버사령부 등에서 군 복무 기간 활용하거나 국방 관련 다양한 창업을 유도하고, 사회에 나와선 이들이 일반 회사에 취업해 4차 산업혁명의 역군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70년대 중반 시절 직장생활을 시작해 산전수전을 다 겪은 후 이처럼 후배들 양성에 올인하고 있는 이 이사장. 그가 말하는 사업, 사업가, 기업가란 이렇다.
"사업은 한마디로 말하면 '성장'이다. '성공'이란 말을 사업에서 쓰면 안된다. 사업은 규모도 중요치 않다. 사업은 또 등산이 아닌 여행이다. 등산은 올라가면 내려와야하지만 여행은 과정이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성장하기 위한 과정을 그냥 즐겨야한다. 사업을 이끄는 기업가는 폼을 잡아서도 안된다. 결국 기업을 유지하는 것은 고객이다. 고객이 떠나면 기업은 소용없다. 고객으로부터 인정받을 때가 기업가는 가장 행복할 때다."
52년생인 이 이사장은 어느덧 칠순을 눈앞에 두고 있다. 70살은 고희(古稀)라고도 한다. 여기엔 '뜻대로 행해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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