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30주년...단독보도한 류희림 사무총장의 회상
-1991년 3월, 영남권 식수원인 낙동강에 페놀 30톤 방류
-대구 시민 70% 피해...임산부는 기형아 낳을 까봐 낙태수술 하기도
-실질적 보상 없이 실비 변상만 이뤄져
-시민운동·환경운동 기폭제...기업의 사회적 책임 일깨워 "이번 사건은 대구시민을 비롯한 1300만 영남권 주민들의 생명의 젖줄이라 할 수 있는 낙동강에 유독물인 페놀이 다량 함유된 폐수를 5개월이라는 오랜기간 동안 무단방류해 인간생활의 기본요소인 식수를 공급하는 상수원을 오염시킴으로써 해당지역 주민들 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엄청난 경악과 분노를 안겨준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은 극도로 심화돼 아직까지도 많은 주민들이 물을 길어다 마시고 있어 약수터에 물이 마를 지경이라고 합니다...(중략) 가장 원시적이고 기초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식생활 조차 마음놓고 할 수 없게 만든 이 사건의 피해를 계량적으로 산출하려는 것 가체가 무리일런지도 모릅니다. 특히 임산부에는 상당수가 페놀에 오염된 수돗물을 마시고 그 후유증으로 기형아 출산을 우려한 나머지 다가오는 출산일을 초조하게 기다리며 불안해 하고 있다는 신문보도도 있습니다" 검찰 논고문 中 발췌
1991년 3월 17일 일요일, 당직을 서고 있던 류희림 KBS 대구총국 기자(현 경주엑스포 사무총장)에게 전화가 빗발쳤다.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대구 주민들의 항의 전화였다.
류 총장은 그 당시를 회상하며 "당시엔 상수도 정화시스템이 낙후됐었고 수돗물에 냄새가 난다는 신고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제보·항의전화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현장에 나가 취재하면서 직접 극심한 악취를 확인했고 평상시 수돗물 냄새 민원과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상황임을 파악했다"고 말했다.
류 사무총장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페놀이었다. 수돗물에서 말로 표현하지 못할 극심한 악취가 났다. 환경청과 대구시상수도사업본부에서 악취의 원인이 페놀 때문이라고 확인해줬다.
페놀은 끓여도 사라지지 않는 심각한 악취를 내는 유독성 화학물질이다. 극심한 악취뿐만 아니라 식수원으로 흘러들어간 페놀로 인해 이를 마신 시민들이 두통과 구토, 피부질환 등 피해를 호소했다.
류 사무총장은 "페놀이 악취의 원인이라는 말을 듣고 대규모 환경문제가 발생했음을 확신했다. 당시 환경청에 출입하면서 페놀에 대한 사전정보를 갖고 있었기에, 맹독성 화학물질이 식수원으로 유출된 시급한 상황임을 파악해 당일 낮 뉴스부터 단독 특종보도를 냈다"고 설명했다.
단독 보도가 나간 뒤 구미산단 소재 기업에서 다량의 페놀을 유출했음이 밝혀졌다. 1991년 3월 14일 오후 10부터 15일 오전 6시까지 전자회로 기판을 만들던 기업이 사용하는 페놀 원액 30톤이 파이프 파열로 낙동강 지류 옥계천으로 흘러들어갔다. 페놀은 영남권 식수원인 낙동강을 오염시켰다. 사건 직전 5개월동안 폐수 325톤을 무단방류한 사실도 알려졌다. 2주 동안 영업중단 후 조업을 재개한 해당 기업은 한번 더 페놀을 방류하는 사고를 쳤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페놀 무단방류에 가담한 직원들은 비밀배출구를 설치하고 해당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세심한 보안 절차를 따랐다.
페놀은 2g만으로 성인 한 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맹독 물질이다. 페놀 30톤 누출로 수돗물에 페놀 수치가 0.11ppm까지 올라간 지역도 있었다. 이는 세계보건기구의 허용치인 0.001ppm의 110배에 달하는 수치다.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이 입었다. 대구 시민의 70%가 마실 물이 없었다. 류 사무총장은 "식수가 없어 주민들이 고통을 겪는 상황에서도 현장을 지휘하는 고위 간부의 모습은 볼수 없었다. 비상급수대책도 전무했다. 대구 지역 약수터는 새벽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말했다.
총제적 난국이었다. 단속을 담당해야하는 환경청 직원들은 매달 현장을 방문해 점검을 해야 하지만 현장단속은 커녕 허위일지를 작성해 단속을 진행하지 않았다. 당시 원인조사가 제대로 안되면서 취수장에서 소독을 명목으로 염소를 과다 투입해 염화페놀이 형성돼 더 큰 문제를 일으켰다. 정부는 수출에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로 조업정지를 2주일 만에 해제했다. 같은 업장에서 2차 유출 사건이 발생하는 등 시민들의 분노와 불신은 극에 달했다.
페놀은 새로 태어날 생명에게 대구의 따스한 햇살을 마주할 기회도 앗아갔다. 류 사무총장은 "당시 2000건이 넘는 신고가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임산부들의 피해였다. 약 600건의 신고가 있었고 기형아 출산을 우려해 낙태수술을 한 경우도 상당 수 있었다고 전해 들었다. 기업이 일으킨 환경사고로 인해 어린 생명이 꽃 피워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은 너무나 아픈 기억으로 가슴에 남아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피해 주민들의 실질적인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류 사무총장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제보와 언론의 끈질긴 심층취재가 감춰져 있던 산업화의 어두운 면으로 있던 환경문제를 수면위로 끌어 올린 대형 사건임에도 처벌과 보상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당시 피해에 대한 인과관계 증명이 어렵다는 이유로 실비변상만이 인정돼 피해사항 가운데 일부분에 대해서만 보상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페놀 유출은 환경의 중요성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됐다. 시민단체와 환경운동단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했고 제도적으로 유역별 환경관리위원회가 구성되고 환경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는 등 장치가 마련됐다.
해당 사건은 지난해 개봉해 200만 가까운 관객을 모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라는 영화의 모티브가 됐다. 류 사무총장은 사건 발생 30주년을 맞아 산업화라는 미명하에 쉽게 생각했던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 자택에 소장 중이던 검찰 논고문을 공개했다.
류 사무총장은 마지막으로 "환경과 개발의 우선순위는 사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산업화라는 핑계 아래 편의와 이윤을 따지며 무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연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환경을 구축하고 기업은 사회적 책임의식을 강하게 가져야한다. 정부는 제도적 장치가 꾸준히 마련되고 발전하고 있지만 처벌과 감독, 관리 등 사고를 미리 예방할 수 있는 선제적 조치와 예방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야 말로 앞으로를 향해 나갈 수 있는 길이라고 본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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