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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경영

[메트로가 만난 기업人]베트남 진출 韓 스타트업 멘토 '베트남실리콘밸리(VSV) 캐피탈' 송승구 대표

삼성종합기술원서 7년간 美 실리콘밸리 법인장하며 세상 변화 체험

 

벤처캐피탈리스트로 한·미 오가며 활동하다 베트남서 '제2의 인생'

 

송 대표 "'역지사지' 중요…사람·문화 이해 후 해외사업 시작해야"

 

창업진흥원 스타트업 글로벌 진출사업 멘토하며 후배들 조언 역할

 

베트남실리콘밸리(VSV)캐피탈 송승구 대표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승호 기자

"베트남 진출을 원하는 한국의 창업기업을 도와주는 것이 나의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올해로 베트남 생활이 7년 밖엔 되질 않았지만 현지에 처음 진출하려는 이들에게는 나의 7년 경험은 최신 버전이 될 것이다. 특히 나는 직접 사업을 하다 쓴맛을 본 경험도 갖고 있지 않느냐.(웃음)"

 

베트남에서 기회를 노리는 한국의 스타트업들을 위해 든든한 지원군 역할하겠다고 나선 베트남실리콘밸리(VSV)캐피탈 송승구 대표(사진)의 말이다.

 

2015년 당시 호랑이를 잡기위해 호랑이 굴을 들어가야겠다며 홀연히 베트남으로 간 송승구 대표는 '꿈'을 이루기 위해 단 2주만에 호기롭게 투자를 했다. 하지만 결과는 처절했다.

 

두번의 실패를 안겨준 아이템 중 하나는 병원사업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은행에서 돈 한번 빌려보질 않았다. 사업을 해도 내 돈으로만 하자고 마음먹었다. 베트남에서 그렇게 접근한 것 중 하나가 병원사업이었다. 현지인들이 한국으로 의료관광을 하는 모습을 보고 아예 한국에서 의사를 데려와 베트남 현지에 병원을 직접 차리는 것이 아이템이었다. 결과는 뻔했다. 내가 병원일을 해본 경험이 없다보니 문제가 생겨도 해결하질 못했다. 베트남에서 시도했던 두번의 사업은 그렇게 다 말아먹었다. 망했다는 말이 맞다."

 

쓴 맛을 보고나니 친구의 말이 들렸다.

 

"베트남 친구가 그러더라. 왜 한국사람들이 베트남에서 실패를 많이 하는지 아느냐고 말이다. 대만, 일본, 싱가포르 등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다 성공하는데 한국 사람은 (자신이)한번도 해보질 않은 일을 베트남에서 하더라는 것이다. 꼭 내 이야기 같았다. 자살골을 넣은 셈이다."

 

송 대표는 고등학교 2학년때인 76년 당시 해외로 유학을 가 한국과는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다. 93년에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종합기술원에 취직을 하고서야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보니 70~80년대 대한민국은 그에겐 없었다.

 

송승구 대표./사진=김승호 기자

"영화를 보다 잠깐 잠든 것처럼 한국이 변화하는 모습을 접하질 못했다. 2013년 어느날 베트남에 가서 버스를 탔는데 (70년대 한국처럼)차장이 교통비를 받더라. 또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물건을 줄 때 두손으로 공손하게 주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잊고 있었던 한국의 모습을 베트남에서 만난 것이다.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베트남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송 대표는 아내와 함께 짐을 싸 베트남으로 떠났다.

 

하지만 베트남에서의 사업 경험은 아팠다. 문제의 본질은 다 똑같다고 생각한 것이 오판이었다. 포기할 순 없었다. 돈 잃고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그는 베트남에서 약 2년을 그냥 보냈다.

 

그는 "아내가 큰 힘이 됐다. 사업 망했다고 바가지 긁지 않고(웃음) 많이 격려해줬다. 내가 베트남에서 재기해 활동을 시작한 것은 아내의 힘이 컸다"고 전했다. 국제변호사인 송 대표의 아내는 현재 BD Law라는 베트남 로펌에서 현지 진출 한국 기업들을 도와주는 업무를 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사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적어도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그냥 살아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초기 투자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기간 동안 현지 사람들을 이해하고 문화를 접하고 다양한 경험을 한 뒤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베트남에 간지 2주만에 투자를 했다 쓴 맛을 본 그의 뼈 있는 말이다

 

물론 그에게 '그냥 2년'은 무작정 쉬는 시간만은 아니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했던 그의 경력이 소문나면서 부르는 곳이 많았다. 각종 투자행사에 참가하거나 투자를 위한 심사를 해달라는 일도 잦았다.

 

그렇게 활동을 하던 와중에 '베트남실리콘밸리(VSV)'를 운명처럼 만났다.

 

"VSV 설립에 참여한 인사들은 베트남의 미래를 위해 스타트업들을 키워야한다고 틈만 나면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목소리를 전달하는 등 생각이 열린 사람들이었다. 베트남에도 미국과 같은 실리콘밸리를 만들어야한다는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러자 정부가 너희들이 아예 전략을 짜서 가져오라고 했다. 그 국책과제명이 'VSV'였다. 그 중심엔 벤처캐피탈(VC)이 있어야하고 엑셀러레이터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 VSV가 지금은 내가 몸담고 있는 법인명이 됐다."

 

송 대표는 VSV측으로부터 정식 멤버 제안을 받은 뒤 한술 더 떠서 아예 자신도 투자금을 대고 파트너로 일하겠다고 전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제너럴 파트너(General Partner)로 VSV캐피탈에서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공교롭게도 '실리콘밸리'라는 단어가 그를 계속 따라다닌 셈이 됐다.

 

송승구 대표. /사진=김승호 기자

송 대표는 유학 후 입사한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처음으로 미국 실리콘밸리 지사장을 맡았다. 7년간을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후 사표를 던지고 무작정 다시 찾은 곳도 실리콘밸리였다.

 

"실리콘밸리에서 주재원 생활을 하면서 세상이 빠르게 바뀌는 모습을 직접 지켜봤다. 인터넷 세상을 주도하는 기업들의 태동도 현지에서 눈으로 확인했다. VC업무도 경험할 수 있었다. 회사를 떠나 다시 실리콘밸리로 간 것도 VC를 하고 싶어서였다."

 

베트남실리콘밸리 캐피탈 대표 명함을 들고 송 대표는 베트남과 한국을 오가며 펀드 결성을 주도하고 있다.

 

첫 1호 펀드에만 230만 달러가 모였다. 베트남에서 4번째로 큰 배달앱 '로십(LOSHIP)'을 운영하고 있는 로지(Lozi)도 1호 펀드로 투자했다.

 

그는 한국 창업진흥원의 스타트업 글로벌 진출사업 멘토 역할도 하고 있다.

 

송 대표는 "베트남에서 한국 사람이 돈만 벌어가면 가만히 놔두겠느냐. 베트남 문화를 이해하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또 베트남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들과 공생할 수 있어야한다. 남북으로 긴 베트남은 하노이와 호치민이 굉장히 멀다. 두 도시의 성격도 차이가 커 사업에 따라 선택지도 달라야 한다. 예를 들면 규제를 만들고 도장을 찍는 도시는 하노이다. 소비재는 호치민이 어울린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인건비가 이들 도시보다 저렴한 다낭이 유리하다. 베트남이라고 다 같은 베트남이 아니다."

 

7년간 베트남에 있으면서 송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자성어는 '역지사지(易地思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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