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에서 소프트웨어 산업 지원을 새로운 협상 카드로 쓴다면 얻을 것이 더 많아질 것"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윤석열 대통령도 들었으면 좋겠다며 말했다. 반도체 산업에 지원을 받을 수 없다면, 시장 규모가 더 크고 부가가치가 높은 소프트웨어 산업을 육성할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문 교수는 국내 전산학 박사 1호다. 소프트웨어 산업이 거의 없었던 때, 고등학교 3학년때부터 개발자를 꿈꾸기 시작해 카이스트 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빌게이츠에 영입을 제안받을 만큼 세계 최고 전문가로 알려져있다.
24일 카이스트 서울 캠퍼스에서 문 교수를 만났다. 매일 10km 거리를 걸어서 출퇴근하고 마라톤과 테니스 등 다양한 운동을 통해 건강을 챙긴다는 말. 70세 나이로 보이지 않을 만큼 정정했다.
"대학교 1학년 때 공부를 하다가 쓰러진 이후로 건강에 각별히 신경을 써왔다. 이번 주말에도 마라톤에 출전할 예정이다. 예전처럼 힘차게 뛰지는 못하지만, 노하우를 많이 쌓아서 기록은 적당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문 교수는 특히 모두가 반도체와 배터리, 바이오만을 미래 먹거리로 주목하는 상황에서도 지식 산업인 소프트웨어를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의 유일한 석학이다. 선진국들에 비해 이미 늦긴 했지만, 앞으로 수십년 수백년 뒤를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소프트웨어 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컴퓨터는 물론이고 전투기까지도 가격에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높다. 전체 산업 규모도 반도체보다 훨씬 크다. 한 번 만들고 나면 간단하게 복사하는 것만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다.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적자를 잘 보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특히나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반도체를 잘 만들게 됐으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 IT 강국이다. 갑자기 배터리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건 후퇴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 "
문 교수는 가장 중요한 과제로 자체 OS 개발을 꼽았다. 반도체 산업을 더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자체 OS가 있어야 한다는 이유다. OS를 갖지 못하면 지금처럼 다른 회사에 휘둘릴 수 밖에 없다며, 자체 OS를 개발해야 컴퓨터든 스마트폰이든 하드웨어도 완벽하게 완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개발한 바다나 타이젠은 일부 가전이나 모바일 제품에서만 쓰는 제한적인 OS라며, MS 윈도우즈나 애플 맥OS, 혹은 IT 기업들이 내부적으로 쓰고 있는 고도화된 OS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자체 OS를 개발하는 게 무모하다는 주장에는 '패배주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컴퓨터가 처음 개발된지 80여년, 앞으로 수백년간 컴퓨터 역사는 이어질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뛰어들어야 미래에는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OS가 있어야 하드웨어도 완성할 수 있다. 지금처럼 OS를 받아다 쓰면 반쪽짜리 제품 밖에 만들 수 없고, 그마저도 끌려다니게 된다. 엔진을 비롯한 주요 부품을 가져다가 조립만 하는 후진국 자동차 회사 같다. 컴퓨터 역사가 짧은데, 앞으로도 후손들이 수백년 수천년간 사용할 거다. 지금부터라도 소프트웨어 산업을 육성하지 않으면 미래에도 선진국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IT 강국이었던 일본도 OS를 개발하지 않아 몰락하게 됐다고 본다."
문 교수는 OS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전폭적인 지원이 필수라고 봤다. 연봉이 3억원을 넘는 A급 개발자 2000명을 영입해 2년 안에 개발을 끝마치고 시장에 내놔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실리콘밸리에 거점을 만들어야 한다며, 미국 정부에 지원을 논의할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 핵심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를 인수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OS는 트렌드가 빨리 바뀐다. 2년 안에 개발해서 시장에 내놔야 가능성이 있다. 중국 화웨이가 자체 OS를 만들었다가 실패한 이유도 상용화까지 기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최신 윈도우즈 명령어는 6000만줄 정도로 추정된다. 1명이 한달에 1000줄씩 만들면 된다."
OS를 우리나라에서 만들 수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우선 인력이 없어서. 그리고 근무 환경이 좋지 않아서다. 정부나 기업이 수십년간 소프트웨어 인력 양성을 주장해왔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프트웨어 개발이 아닌 활용에만 머물러 있다고도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개발자들이 살기에는 좋지 않은 환경이다. 넓은 주거 지역에 인프라도 완벽하게 갖춰진 미국 실리콘밸리 일대가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에는 적합하다. 정부가 앞으로 소프트웨어 활용이 아닌 개발자를 육성해야 하겠지만, 일단은 수준 높은 해외 인력을 활용하는 게 합리적이다."
정부가 소프트웨어 산업 전문가를 중용해야 한다고도 당부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요직에는 대부분 반도체를 비롯한 제조업 전문가만 자리를 잡고 있다며, 소프트웨어 산업이 지원을 받지 못한 이유를 추측했다.
"미국의 최고 개발자였던 짐 그레이는 행방불명되기 전까지 집권당에 관계없이 대통령에 자문을 해왔다. 미국은 분야별로 최고 전문가에 정당에 관계없이 자문 역할을 맡긴다. 우리나라는 정권에 따라 바꾸는 데다가, 그나마도 소프트웨어 전문가도 거의 없다. 세계 곳곳에서 강연 요청을 받는 내가 국내에서만큼은 바쁘지 않다는 것만 봐도 현실을 알 수 있다."
Copyright ⓒ Metro. All rights reserved. (주)메트로미디어의 모든 기사 또는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주식회사 메트로미디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8 ㅣ Tel : 02. 721. 9800 / Fax : 02. 730. 2882
문의메일 : webmaster@metroseoul.co.kr ㅣ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이장규 ㅣ 신문사업 등록번호 : 서울, 가00206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2546 ㅣ 등록일 : 2013년 3월 20일 ㅣ 제호 : 메트로신문
사업자등록번호 : 242-88-00131 ISSN : 2635-9219 ㅣ 청소년 보호책임자 및 고충처리인 : 안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