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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147)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하는 공간...용산구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10월30일 오후 시민들이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을 둘러보고 있다./ 김현정 기자

작년 10월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핼러윈 축제로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해밀톤호텔 서쪽에 있는 폭 3~4m, 길이 40m의 좁은 골목길로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세계음식문화거리에서 이태원역으로 내려가려는 사람과, 그 반대 방향으로 올라가려는 이들이 맞부딪혀 압사 사고가 발생해 159명이 사망했다. 부상자 수는 부정확하다. 경찰은 196명, 검찰은 294명, 행정안전부는 320명이 다쳤다고 했다. 각 기관마다 집계 기준이 달라 이렇게 발표한 것이라고 하는데, 뒤죽박죽인 통계 수치는 이태원 참사 대응에 관계 기관들의 손발이 얼마나 안 맞았는지를 보여준다.

 

참사가 일어난 지 약 1년 만인 지난 10월26일 사고 현장에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이 조성됐다. 이 공간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의 요청으로 용산구청 참사대책추진단이 설치한 희생자 추모공간이다.

 

◆눈물과 탄식 가득한 추모공간

 

지난 10월30일 오후 한 청년이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지난 10월30일 오후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을 찾았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로 향하는 길엔 '핼러윈데이 혼잡이 예상되오니 귀가시 인근 역 이용 바랍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추모공간은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위치한 해밀톤호텔과 이태원로 173 사이에 마련됐다.

 

길의 입구 바닥엔 '우리에겐 아직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보라색 '추모의 벽'에는 시민들이 남긴 포스트잇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벽의 오른쪽 귀퉁이엔 세월호 리본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꽃바구니가 놓였다. 보라색 장미와 국화, 튤립 등이 가득한 꽃바구니 옆에는 1인용 책상 하나가 있었다. 책상 위엔 포스트잇, 펜, 스카치테이프가 담긴 3단 수납함과 누군가 색종이로 접어놓고 간 학알들이 놓였다.

 

시민들은 희생자들에게 줄 작은 선물을 추모의 벽 앞에 두고 갔다. 감자칩, 에너지바, 초콜릿우유, 젤리, 아직 얼음이 녹지 않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등이 국화 꽃다발과 소주병 사이사이에 놓여 있었다.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는 주황색과 보라색이 반반 섞인 별들이 매달린 조형물이 걸렸다. 주황색은 핼러윈 축제와 안전이라는 의미를, 보라색은 밤하늘과 애도, 독특함이란 뜻을 지녔다고 한다.

 

10월30일 오후 시민들이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을 걷고 있다./ 김현정 기자

추모공간 옆에는 하얀 빌보드(디지털 안내판) 3개가 설치됐다. 첫 번째 빌보드엔 "당신이 서 있는 이곳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기억해야 할 얼굴들, 부르지 못한 이름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라며 "아직 부르지 못한 이름을 새기고 누구나 안전하고 존엄하게 이 길을 걸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작품을 만든 권은비 미술가는 "창작자로서 미완성의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희생자, 구조자, 유가족, 지역 상인, 주민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제정되고 책임 있는 사람들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할 때 이 문장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두 번째 빌보드에는 반짝이는 윤슬의 모습이, 세 번째 디지털 안내판에는 물 위에서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는 사람이 사진으로 찍혀 있었다. 이날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을 방문한 시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희생자를 추모했다. 양복을 갖춰 입은 한 청년은 추모의 벽 앞에 한참을 쪼그려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과 잠바를 걸친 대학생은 멀찌감치 서서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얼결에 이곳을 지나가게 된 시민들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걸 보고 다가와서는 추모의 벽에 붙은 포스트잇에 적힌 편지를 읽다가 갔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나

 

지난 10월30일 오후 시민들이 '추모의 벽'에 붙은 포스트잇을 살펴보고 있다./ 김현정 기자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을 찾은 시민들은 추모공간에 어떤 말을 남기고 갔을까. "많은 것들이 너무 늦은 것으로 느껴집니다. 이보다는 나은 세상에 여러분과 제가 함께 살아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이태원 거리를 걸은 것이 죽을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태원 거리를 걸은 것이 잘못일 수도 없습니다. 많은 것들이 부당하고 성숙하지 못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부디 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이기를, 죄 없는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는 세상이기를", "세월호 이후로도 변화를 이끌지 못한 어른들 때문에 여러분들을 보냈습니다. 더 이상은 이러한 희생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막아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좀 더 적극적으로 민원을 넣었어야 했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전화 한 통화하고 말았어요.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게요", "얘들아. 나는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어. 남은 인생. 너네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세상 만들도록 노력할게. 왜 경찰이 배치되지 않았는지, 영정과 위패도 없이 분향소를 차렸는지. 미안하다. 부디 그곳에선 평안하길", "ㅇㅇ아 너무 보러오고 싶은데 또 너무 무서워서 오늘 하루종일 주변만 빙빙 돌았어. 사랑하고 그립다. 죽음보다 네가 남긴 것들을 기억할게", "일 년이 지나 왔습니다.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라도 힘이 되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특별법 제정을 위해 함께하겠습니다", "행복한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을 뿐인데 여기 이곳에는 나만 있다는 것이 미안합니다"

 

시민들은 참사 책임자를 대신해 희생자들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재발 방지 대책 마련과 진상 규명을 약속했다. 모두 정치인들이 유가족에게 해주지 않은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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