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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여는 사람들] 마술사 명품복원 민석기·조영훈 공동대표 “고객의 명품을 소중하게 '치료'합니다”

(왼쪽부터)압구정 '마술사 명품복원'의 민석기 대표와 조영훈 대표/허정윤 기자

시장 규모 세계 7위, 1인당 소비액은 세계 1위. 바로 한국의 '명품 시장'의 현주소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1인당 명품 소비액은 325달러로 미국 280달러와 중국 55달러를 가볍게 제치며 한국인들의 '명품 사랑'을 보여줬다.

 

문제는 명품 구매 이후다. 명품은 관리도 여간 쉽지 않다. 오죽하면 '나는 비를 맞아도 내 가방은 비를 맞힐 수는 없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비싼 가격에 비해 내구성은 또 어찌나 약한지 작은 충격에도 생채기 나기 일쑤다. 나름 오래 잘 쓰기 위해서 한 일(코팅, 세척 등)이 도리어 명품에 부담을 주는 일도 허다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명의'를 찾듯 '복원 장인'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 "24시간이 모자라"…시대가 성장시킨 사업

 

'마술사 명품복원'의 공동대표 민석기 대표(62)와 조영훈 대표(51)는 아침부터 이른바 '귀하신 몸'들을 다루느라 분주했다.

 

조 대표는 인터뷰 중에도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과 택배사를 상대하느라 바빴고, 민 대표는 묵묵하게 고객의 손때 묻은 에르메스(Hermes) 서류 가방을 고치느라 여념이 없었다.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입소문을 듣고 택배를 붙여 명품 수선을 의뢰해 오기 때문이다.

 

'마술사 명품복원'은 지리적으로 압구정 현대 백화점과 갤러리아 백화점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가게는 고객들이 맡겨둔 다양한 명품 브랜드 가방과 신발이 즐비했다. 염색, 장식 수리, 가죽 교체, 재봉 등 다양한 기술로 생명이 꺼져가는 명품을 살려내는 작업실은 유약 냄새와 진한 가죽냄새가 가득했다. 백화점에서 먼지 하나 묻었다가는 큰일 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던 모습들은 어디 가고 비닐 쇼핑백이나 종이가방 속에서 순번을 대기하는 모습이 '진짜 명품 맞을까?'하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반려견에게 물어 뜯겨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진 샤넬(Chanel) 체인 지갑부터 오래 들어 손잡이가 변색된 루이뷔통(Louis Vuitton), 닳고 오염된 디올(Dior) 슬링백 구두까지. 각자의 이유로 '마술사'를 찾아온 물건들이 두 장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워낙 고가의 제품이다 보니 맡기는 사람도 고치는 사람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복원 시장에서 두 사람의 합은 맞아떨어졌다.

 

조 대표는 고객이 찾아오면 먼저 상담을 진행하고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 어떤 복원·수선 작업을 진행할지 친절히 알려준 뒤 민 대표와 함께 수선을 진행한다. 그 후에는 복원 전·후를 비교하는 콘텐츠까지 촬영한다. 48년 노하우를 가진 민 대표의 손은 빠르고 세밀한 작업을 위해 쉴 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수선·수리를 전문으로 했던 이전 회사에서 만나 한층 더 높은 복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복원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의기투합했다. 시간을 들여 더 고난도의 복원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맞았기 때문이다.

 

복원 작업을 배운지는 8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고객의 마음을 읽는 조 대표와 열네 살부터 수선의 세계에 뛰어든 민 대표, 그리고 2명의 프리랜서 장인까지 네 사람의 시간은 시계 볼 틈 없이 흘러간다.

 

조 대표는 명품 복원 시장의 성장을 확신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오픈런을 할 정도로 새 명품을 구매한 사람도 많지만 경기가 안 좋아지다 보니 '있는 명품 잘 고쳐 쓰자'는 사람도 많이 늘었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고객층도 다양하다. 개별 수선 고객이 40%로 가장 많지만 ▲명품 매장 요청 AS 20% ▲리셀러 20% ▲동종업계 요청 20% 등으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민 대표는 "의뢰 품목의 상태에 따라 복원에 걸리는 시간이 다르다 보니 가격도, 수선 시간도 천차만별"이라며 "거의 모든 제품이 수작업을 거쳐야 해서 언제나 손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했다.

 

복원 작업 중인 민석기 대표. 벽면 가득 다양한 실들과 가죽들이 걸려있는 모습./허정윤 기자

 

 

◆ '진심'으로 '진품'을 치료하는 마술사

 

민 대표는 "가품은 고치지 않는다"며 "가품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날로 진화해 허투루 보지 않으려 애쓴다"고 말했다.

 

온라인 명품 시장을 통해 해외직구가 늘어나면서 가품을 향한 경고음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가품 여부를 감별해 주는 정품 인증까지 카피할 정도니 날이 갈수록 정품 감별조차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마술사는 작업 전 진품 여부를 꼼꼼히 따진다.

 

다만 조 대표는 "사실 가품인 것을 확인한 뒤에는 물건을 가져온 고객에게는 선물을 받았는지 어디서 구매했는지 등을 조심스럽게 질문한다"며 "가품은 선물을 받거나 중고장터에서 산 경우가 다반사인데 실제로 가품임에도 '배우자가 출장길에 사온 선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곤 한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고객이 어떤 상황에서 물건을 받았는지 모르기에 무작정 '가짜'라고 말하기 보다 수선비가 너무 많이 든다고 돌려 말하거나 제품을 고치는데 너무 오래 걸릴 것 같다고 말해 복원 접수를 고사하곤 한다"라고 귀띔했다.

 

간혹 조 대표는 진짜 명품(진품)이라 해도 제품 가격에 비해 비싼 복원 비용이 드는 경우도 있다고 예를 들었다. 그는 "비싼 복원 가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작업을 진행하는 고객들이 있는데, 그런 경우는 부모님의 유품이거나 특별한 기념일에 받은 소중한 선물인 경우가 많다"고 답했다.

 

손잡이 교체 작업을 마친 고객의 가방을 소개하는 영상을 촬영중인 조영훈 대표/허정윤 기자

 

 

◆ 명품 복원·수선의 노하우는 '노력과 창의력'

 

코로나19 펜대믹은 명품 브랜드들에게 기회였다. 그리고 마술사를 찾는 사람은 더 많아질 전망이다. 명품은 소장 후 1~7년 사이 첫 수리를 맡기는 편이라는 통계가 있는 만큼 명품 복원·수선 가게들의 잠재 고객이 많아지고 있는 셈이다.

 

조 대표와 민 대표는 이 시장이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해야 하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전통적인 명품 브랜드부터 신흥 명품 브랜드까지 시즌마다 새로운 디자인들이 쏟아져 나오기에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 대표는 "물론 소위 '명품 클래식 라인'만 수선해도 수익이 나지만, 명품 브랜드마다 특유의 시그니처 디자인을 살린다든지, 수선이 까다로운 요즘 디자인 복원 작업에 성공할 때면 자부심을 느낀다"라고 언급했다.

 

물건의 진품과 가품을 구별하는 일도 '마술사'에게는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물건의 원가가 비싼 만큼 수선비가 만만찮은 것도 사실이다.

 

그 어떤 분야보다 도제식으로 이뤄지는 작업이 많은 만큼 '장인 부족'은 늘 고질적인 문제다. 명품 복원 48년차 배테랑인 민 대표도 인터뷰 당일 딸의 결혼식 전날임에도 수선에 몰두하고 있었다. 해지고 오염된 에르메스의 봉제를 뜯어내고 가장 비슷한 실을 찾아 튼튼하게 다시 재봉하는 일은 3시간을 꼬박 고개를 숙이고 한 자리에서 집중해야만 했다.

 

두 대표는 마땅한 후계자가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힘닿는 데까지 사업을 이어갈 생각이다. 민 대표는 "말끔해진 자신의 명품을 들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면 기쁨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고객이 의뢰한 부분을 넘어 '마술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복원을 하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며 "조용한 작업실을 가득 채우는 재봉틀 소리, 가죽 재단 소리, 실 뜯는 소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행복하다"고 웃어보였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복원 작업을 끝낸 샤넬 체인 미니백, 유약 바르는 작업 중인 조영훈 대표, 손잡이 교체 작업을 마친 루이뷔통 가방, 바느질 중인 민석기 대표/허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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