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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지역

[되살아난 서울] (154) 조선시대 칼 씻고 종이 씻던 장소…종로구 '세검정 터'

이달 4일 오후 시민들이 세검정 앞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김현정 기자

서울 종로구에는 홍제천의 천변 풍경을 즐기기 위해 지은 정자 '세검정'이 자리해 있다. 서울의 북방 관문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숙종 때 세검정 일대에 북한산성과 서울 도성을 잇는 탕춘대성이 지어져 무신들이 정자를 자주 찾았다. 경치가 빼어나 화가나 시인 같은 묵객들도 세검정에서 풍류를 즐겼다. 겸재 정선이 그린 '세검정도'와 다산 정약용이 쓴 '유세검정기' 등에서 당시 세검정의 풍광을 확인할 수 있다.

 

◆인조반정 꾀하며 검 씻은 곳

 

4일 오후 아이들이 세검정 터 일대에서 여가를 즐기고 있다./ 김현정 기자

지난 4일 오후 세검정 터를 방문했다. 지하철 3호선 홍제역 1번 출구로 나와 유진상가 앞에서 7730번 버스를 타고 5개 정류장을 이동해 세검정·상명대 정거장에서 내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세검정은 누리끼리한 화강암 암반 위에 우뚝 솟아 있다. 정(丁)자형의 팔작지붕이 건물을 덮고 있는 형태다. 지붕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박쥐가 양 날갯죽지를 쫙 펴고 비행하는 장면을 상상하면 된다. 한적한 주택가 한켠에 더부살이하고 있어서인지 이날 정자 일대는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아이들은 정자 밑 바위틈에 숨어 숨바꼭질을 하거나 막대기로 홍제천 바닥을 쿡쿡 찌르며 자연 안에서 뛰어놀았다.

 

지난 4일 오후 세검정 터를 방문했다./ 김현정 기자

과거 세검정은 지금처럼 평온하기만 한 장소는 아녔다. 이름의 유래를 보면 알 수 있다. '궁궐지'에 따르면 인조반정 때 김유, 이귀 등이 이곳에 모여 광해군 폐위를 의논하고 칼을 갈아 씻었던 자리라고 해서 '세검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거사 전 밖으로 새 나가면 안 될 비밀을 사방이 뻥 뚫린 정자에서 한 연유가 궁금했는데 겸재 정선의 그림에서 그 실마리를 얻었다. 정선의 1740년작 '세검정도'에는 조선시대 정자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당시 세검정 주위엔 담장이 쳐졌고, 길가와 개울 쪽으로 문이 나 있어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좋은 장소였다.

 

정자의 조성 시기는 불명확하지만, 1748년(영조 24년) 정자를 개축하며 세검정이라는 현판을 달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세검정의 모습이 달라진 이유는 1941년 불에 타 사라진 것을 정선의 '세검정도'를 바탕으로 1977년 복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자를 새로 지을 때 조선시대 당시 모습을 그대로 살려 만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실록 편찬 때 사용한 종이 씻던 곳

 

이달 4일 오후 아이들이 세검정 터 일대에서 숨바꼭질 놀이를 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세검정이 들어선 널따란 바위는 '차일암'으로 불린다. 바위에 차일(궁중 행사 때 햇빛을 가리기 위해 치는 휘장)을 쳤던 흔적이 있어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차일암에서는 세초 작업이 이뤄졌다. 세초는 실록에 사용된 사초(史草·사관이 시정을 적어 둔 사기의 초고)를 없애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지금이야 종이 파쇄기로 쉽고 간단하게 중요한 문서들을 없앨 수 있지만, 당시엔 사람들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해야 했다. 실록 편찬에 쓰인 초본은 물로 씻어 글자를 지운 뒤 종이를 재활용했다. 세초까지 하면서 원자료를 철저하게 삭제한 까닭은 대외비로 관리되던 사초의 유출을 막아 완성된 실록에 시비가 걸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차일암에서 먹을 뺀 이유는 근처에 고급 종이를 제작하던 '조지서'라는 관청이 있어 인력 동원이 쉬웠고, 북한산에서 흘러내린 홍제천 맑은 물이 있어 세초에 적합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차일암에서는 실록 편찬에 참여한 사람들의 노고를 격려하는 '세초연'이란 잔치도 열렸다.

 

종로구는 "세검정 터는 경치가 좋은 계곡에 정자를 지어 자연을 즐기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문화를 잘 엿볼 수 있는 곳"이라며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의 무대가 됐던 서울의 도성 밖 경승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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