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불안과 대내외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불안 심리가 한국의 실물 경제를 어지럽히고 있다. 내수 부진의 심화는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을 악화시키고, 이는 곧 자본시장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낮아지고 있는 한국 시장의 성장력으로 인해 경기 순응성 확대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韓 경기, 연속 경고음...기업들은 '골머리'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3월 경제동향을 통해 "정국 불안의 영향은 완화되고 있으나, 대외 여건이 악화되며 경기 하방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며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석 달 연속 경고 판단을 내렸다. 특히 미국발 통상 갈등이 정국 불안보다 커졌다고 판단했다. 전체 수출에서 미국의 비중이 18.7%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관세 인상 등으로 인해 수출 감소 요인이 확대되고 있다는 우려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2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CSI)는 95.2로 전월(91.2)보다 4.0포인트 올랐다. 다만 여전히 기준선(100)을 하회하고 있는 만큼 소비 심리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기업들의 체감 경기 역시 부진한 상태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3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를 조사한 결과 90.8로 집계됐다. 통상적으로 BSI가 기준치인 100보다 높으면 '낙관적'이고, 낮으면 '비관적'으로 이해한다.
전문가들은 경기 회복을 위한 정책적 대응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소비·투자 심리 개선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지원과 함께, 기업 자금 조달 환경을 개선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기업들의 투자 위축이 장기화될 경우 생산과 고용 둔화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소비 심리 위축으로 연결되면서 결국 결국 한국 경제의 저성장 고착화를 가속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 관계자는 "지금 소상공인들은 역대 제일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소상공인들이 안정돼야 살아날 수 있는 여러 산업들이 모두 망가지고 있다"며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계엄 사태, 글로벌 리스크 등 우리나라의 구심점이 부재한 상황인 만큼 지원책을 통해 밸런스를 잡아 줘야 하는데, 오히려 상장 규정을 강화하는 등 엄격한 잣대를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바이오·헬스 기업 등 기술력으로 평가받고 성장하는 기업들의 전망이 약화됐다고 덧붙였다. 경기 침체 국면에서는 금리 인하, 통화량 증대 등 시중에 자본을 공급하는 정책이 적합하다는 부연이다.
경기 둔화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 환경도 악화되고 있다. 특히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줄어들며 자금 유동성이 점점 경색되는 분위기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중소기업들은 신용등급이 낮아 직접 금융에서의 회사채 발행이 어렵고, 은행 대출 의존도가 높다"며 "하지만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 등을 위주로 공급하고 기업대출 규모는 적극적으로 늘리지 않기 때문에 중소기업들의 자금조달이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기업의 회사채 발행액은 19조7078억원으로, 직전 달인 1월 12조2801억원 대비 60.48% 급증했다. 다만 발행된 회사채의 69%가 채무 상환에 사용되면서 순발행액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금리인하 기대감이 올라가면서 과거 고금리 채권에 대한 차환 발행이 늘어났지만, 실질적 신규 수요는 줄어든 것이다. 실제로 회사채 순발행액 규모는 지난해 1·2월 12조4720억원에서 올해 9조9124억원으로 감소했다.
◆미래 없는 한국 기업, 매력 없는 한국 증시
기업들의 성장 동력 저하는 국내 증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 증시 역시 지난해 하반기부터 불안정한 흐름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지난해 8월부터 7개월 연속 순매도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8.59% 급락했다. 올해 들어서는 5%대 오르며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트럼프 리스크'로 인해 다시 주춤하고 있다.
양철원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 왕수봉 아주대 경영학부 교수, 최재원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달 발표한 '무엇이 과연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주가순자산비율(PBR)을 설명하는가' 논문을 통해 국내 주식시장 내 기업들의 성장 잠재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짚었다.
연구진은 "자본투자 규모가 크고 투자성과가 좋은 기업일수록 PBR이 높았다"며 "한국 기업의 PBR이 낮다면, 이는 업력이 길고 유형자산 투자가 활발한 기업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한국의 산업구조가 개선돼 성장주에서도 유망한 기업들이 많이 나타날 필요가 있고 이런 방향으로 정부 정책도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도 국내 증시 부진과 관련해 "주요 상장 기업들의 향후 경쟁력에 비롯한 문제"라며 "주가는 앞으로 기업이 얼마나 돈을 잘 벌거냐에 대한 기대로 형성되는데, 우리 주요 기업들의 향후 현금 흐름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한·미 자본시장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4.5%가 미국 증시를 선호한다고 응답했으며, 이 중 27.2%는 기업의 혁신·수익성을 꼽았다. 반면, 국내 자본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34.6%가 '국내기업의 혁신성 정체'라고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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