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서울] (139) '원령공주 숲'처럼 아름다운 '백련근린공원'
백련근린공원은 서울 서대문구와 은평구에 걸쳐진 백련산에 자리했다. 산명은 인근에 있는 사찰 '백련사'에서 따왔다. 백련산은 왕족들이 매를 날리며 사냥을 하던 매바위가 있던 탓에 '응봉(鷹峰)'으로도 불렸다. 매바위는 도시화되면서 사라졌다. 응암동 주민들은 과거에 이곳에 지역의 상징물이 있었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백련산 정상에 놓인 정자 '은평정' 밑에 매와 비슷하게 생긴 돌을 '매바위'로 명명하고, 매년 '매바위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나무의 정령 튀어나올 듯 '신비로운 숲' 지난 3일 오후 백련근린공원을 찾았다. 지하철 3호선 홍제역 3번 출구 앞에서 서대문01번 마을버스를 타고 9개 정류장을 이동해 '미성아파트' 정거장에서 내렸다. 은평구청 방향으로 367m(도보 10분 소요)를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노란색 풍차가 달린 집모양 조형물이 공원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았다. 산책로를 따라 숲길로 들어섰다. 상수리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가래나무, 밤나무 등 다양한 수목이 우거진 녹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노란색에 가까운 옅은 녹색부터 초록색, 짙은 청록색까지 채도가 다양한 푸른 나뭇잎들이 바람에 흩날렸다.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의 아름다운 선율이 나무에서 흘러 나오는 듯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에서나 볼 법한 신비로운 풍광이었다. 공원은 원령공주의 실제 배경인 야쿠시마 섬 내 '이끼의 숲'처럼 보였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연두색 이끼로 뒤덮인 돌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만화에서처럼 자그마한 숲의 정령들이 곧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호랑나비와 흰배추나비가 8자를 그리며 정신없이 날아다니면서 눈을 어지럽혔다. 숲에서는 이따금씩 '투두두둑' 하는 빗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손바닥 반만 한 크기로 잘 영근 솔방울들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면서 내는 소리였다.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34.9도를 기록한 푹푹 찌는 날씨였지만, 공원 안은 제법 서늘했다. 동네 주민들은 벤치에 앉아 이웃들과 담소를 나눴다. 할머니 한 분이 일행과 대화를 하며 주황색 비닐봉투를 계속해서 휘두르고 있었다. 왜 그런고 했더니, 모기와 벌레를 쫓고 있던 것이었다. 이런 대비 없이 넋놓고 앉아 있던 사람들은 모기에 물려 살갗이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백련산 정상에는 '은평정'이라는 아담한 정자가 마련됐다. 성인 4명이 들어가면 꽉 찰만큼 내부가 비좁았다. 정자에 올라 서울시내 경치를 감상했다. 좌측에서부터 국회의사당, 당산철교, 양화대교, 선유도, 성산대교, 평화의공원, 월드컵경기장, 하늘공원, 불광천, 노을공원, 가양대교, 봉산, 방화대교가 파노라마 사진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정상에서 보는 탁 트인 풍경이 산행의 고단함을 잊게 만들었다. 은평정은 다른 정자들과 다르게 벤치가 내부가 아닌 외부에 설치됐다. 나무 의자들이 정자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져 있었다. 나무 틈새를 비집고 피어난 잡초가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했다. 잠시 숨을 돌린 후 백련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헬스장에나 있을 법한 전문 운동기구들이 설치된 '백련산 헬스클럽'이 나왔다. 이곳은 회원들이 공동 투자해 만든 운동공간이라고 한다. 헬스클럽 내 거울 앞에는 "기구를 소중히 다루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꾸준히 운동하시어 9988 건강하세요"라는 재밌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참고로 '9988'에는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는 의미가 담겼다. 여름엔 어딜가도 불쾌한 냄새가 풍겨 오는 도시의 빌딩숲과 달리 백련근린공원 나무숲에서는 코를 정화시키는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아카시아향 0.5스푼, 솔향 7스푼, 흙향 2.5스푼을 냄비에 넣고 섞은 듯한 자연의 향이었다. ◆고즈넉한 사찰 '백련사' 산에서 내려와 우회전을 하면 비석 여러개가 놓인 작은 담을 볼 수 있다. 담장을 따라 걸으면 고래등만 한 기와 지붕이 얹어진 백련사 일주문이 나온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며 불경 외는 소리가 사찰에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백련사 한가운데에는 정토관세음보살 석상과 명부전이 자리했다. 사찰의 관문 일주문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해탈루, 범종각, 종무소, 봉안당(납골), 무량수전, 원통전, 약사전, 삼성각, 독성각, 극락전이 차례로 들어섰다. 불상이 안치된 절의 정당 앞에는 "청설모와 고양이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한 불기 안에 담긴 쌀도 조류의 먹이가 되므로 공양물과 쌀을 진설한 후 법전 문을 꼭 닫아 주시기 바랍니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백련사는 신라 경덕왕 6년(서기 747년) 진표율사에 의해 창건된 국내 최초의 정토 도량이다. 진표율사는 불교 경전인 '아미타경'에 적힌 "누구든 아미타불을 염하면 극락정토에 왕생한다"는 구절에 따라 부처님의 정토사상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백련사를 지었다. 원래 사명은 '부처님이 계시는 청정한 도량'이라는 뜻을 가진 '정토사'였다. 조선시대 정종 원년(1399년) 무학왕사의 지휘로 함허화상이 크게 중창했고 세조의 장녀인 의숙공주가 부마인 하성부원군 정현조의 천도발원을 위해 정토사를 원찰로 정하면서 절명을 '백련사'로 바꿨다. 사찰에서 흰색 목련이 피어나서 사명을 백련사로 지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화재로 사찰 건물이 소실됐다. 이후 대중이 불사를 다시 짓기 시작해 현종 3년(1662년) 대법전을 중건했다. 영조 50년(1774년)에는 백련사에서 수행하던 낙창군 이탱이 크게 중창해 사찰의 규모를 일신했다. 1965년 이후 스님들이 힘을 합쳐 극락전을 중창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백련사는 국난이 있을 때마다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호국원찰로 보전돼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