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人 머니 산업 IT·과학 정치&정책 생활경제 사회 에듀&JOB 기획연재 오피니언 라이프 CEO와칭 플러스
글로벌 메트로신문
로그인
회원가입

    머니

  • 증권
  • 은행
  • 보험
  • 카드
  • 부동산
  • 경제일반

    산업

  • 재계
  • 자동차
  • 전기전자
  • 물류항공
  • 산업일반

    IT·과학

  • 인터넷
  • 게임
  • 방송통신
  • IT·과학일반

    사회

  • 지방행정
  • 국제
  • 사회일반

    플러스

  • 한줄뉴스
  • 포토
  • 영상
  • 운세/사주
[되살아난 서울] ⑱ 통일 염원 담긴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탕, 탕, 탕, 탕" 1949년 6월 26일 낮 12시 40분, 백범 김구 선생의 사저 경교장 2층 집무실에서 네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이 주한미군방첩대(CIC) 요원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다. 그의 나이 향년 74세였다. 대한민국 헌법은 '1919년 수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임시정부가 정한 국호, 국기, 국체, 국가를 이어받았다. 경교장은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자 환국 이후 첫 국무위원회가 개최된 역사적인 장소다. 하지만 김구 선생 서거 후, 이곳은 외국 대사관과 병원 시설 등으로 사용되면서 제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이후 시민사회에서 경교장을 문화재로 지정·복원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됐다. 서울시는 2013년 약 3년여간의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마치고 경교장을 시민에게 개방했다. ◆70년 전에 멈춘 시계…백범 김구 선생의 숨결 지난달 27일 경교장을 찾아 민족 자주통일을 위해 애쓴 백범 김구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서울 종로구 평동 강북삼성병원의 응급실 옆에 위치한 경교장은 아치형 창문 5개가 인상적인 2층짜리 건물이다. 가장 먼저 입구 왼쪽에 있는 계단을 따라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임시 정부 당시 보일러실, 식당, 방이 있었던 자리에는 경교장의 역사, 임시정부가 걸어온 길, 백범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을 주제로 한 3개의 전시실이 들어서 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전시물은 백범 김구 선생의 혈의였다. 김구 선생이 서거 당시 입고 있었던 하얀색 저고리의 목덜미와 겨드랑이 부분에는 검붉은 핏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파주시 금촌동에서 온 김수민(13) 양은 "저 옷은 지금 봐도 마음이 아프고 서럽다"면서 "그 당시 사람들은 김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더 슬펐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글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 속옷도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속옷 밀서라 불리는 전시물은 1948년 정부수립 직전 북한 내에 민족진영 비밀조직원들이 김구 선생에게 북한 정세를 보고하고, 남북 통일정부수립을 탄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경교장을 찾은 정혜연(21) 씨는 "속옷 밀서에서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 요인들이 독립국을 위해 고군분투한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나라를 위한 이분들의 노력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소유권 병원에…100% 복원 어려워 경교장 1층에는 국무위원회가 개최된 응접실이 있다. 김구 선생은 이곳에서 국내외 주요 인사들을 접견했다. 응접실에서 복도로 나와 오른쪽으로 가면 귀빈식당이 나온다. 식당 안에는 양 끝에 1명, 가운데 7명씩 총 16명이 앉을 수 있는 직사각형 모양의 기다란 식탁이 놓여 있다. 임시정부의 공식 만찬이 열렸던 식당은 김구 선생 서거 당시 빈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한층 더 위로 올라가면 김구 선생의 집무실과 침실, 서재 등을 볼 수 있다. 일식 다다미방으로 꾸며진 임시정부 요인 숙소는 그 당시 사진자료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집무실 책상 뒤 창문에는 서거 당시 총탄 자국도 재현돼 있다. 송현성(43) 씨는 "경교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여기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딸애가 아파서 병원에 왔는데, 밖에 경교장이라고 쓰여 있어 들어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람들이 김구 선생은 알고 있지만, 경교장은 잘 모르는 것 같다"며 "홍보가 잘 돼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서울 역사박물관 관계자는 "경교장에는 하루에 200명 정도가 방문한다"며 "지하철 광고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예산이 부족해 홍보에 어려움이 있다"고 고백했다. 한편, 아직 복원이 이뤄지지 않은 부분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는 시민도 있었다. 자녀와 함께 경교장을 찾은 김영민(41) 씨는 "남북 정상회담도 있고 해서 아이에게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 방문했다"면서 "김구 선생이 남북 연석회의 때 북행을 위해 사용한 지하 1층 보일러실 북측 문도 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서울 광진구에서 온 박모(55) 씨는 "외부는 복원이 전혀 안 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박 씨는 "건물 뒤쪽은 병원 응급실과 붙어있고, 정원이 있었다던 앞마당은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경교장은 건축 당시 전체 면적이 5267.44㎡에 달하는 넓은 공간이었지만, 현재 규모는 대지 396㎡에 건물 총면적 945㎡ 밖에 되지 않는다. 서울 역사박물관 관계자는 "경교장 소유권이 삼성병원 쪽에 있고, 이미 병원 건물이 상당 부분 들어서 있어 100% 완벽한 복원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2018-06-06 12:00:37
[살맛나는세상만들기] 건강한 사회 만들기에 앞장서는 'JW중외제약'

[살맛나는세상만들기] 건강한 사회 만들기에 앞장서는 'JW중외제약' JW중외제약은 '생명존중(生命尊重)' 정신을 바탕으로 공익법인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을 설립했다. 질병 치료뿐 아니라 마음까지 치유해 더불어 살아가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중외학술복지재단은 비영리 공익법인으로, 이종호 JW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2011년 개인 사재(약 200억원)를 출연해 만들었다. 이후 이사장을 맡아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실천하고 있다. 중외학술복지재단은 보건의료 분야 학술연구와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공익법인으로 참 인술을 실천하고 있는 의료인을 발굴하는 '성천상' 시상 사업, 학술·장학 사업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중외학술복지재단은 장애인의 예술적 재능을 육성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지원 활동과 복지 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음악을 연계한 활동이 그 중 대표적이다. ◆장애인합장단 후원 JW중외제약은 홀트일산복지타운 소속의 중증 지적장애인으로 구성된 '영혼의 소리로' 합창단을 14년째 후원하고 있다. 1999년 창단된 '영혼의 소리로'는 홀트일산복지타운 소속 장애원생들 중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30여명의 단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뇌병변, 정신지체, 정신질환, 언어장애 등 중증장애를 지니고 있어 노래 한 곡을 익히는데 최소 한 달 이상 걸린다. 재단 이사장인 이종호 명예회장은 합창단이 매번 공연을 할 때마다 단원들을 찾아 격려하고 설날이나 추석, 크리스마스 등은 물론 평상시에도 홀트일산복지타운을 찾아 단원들과 인근 식당에서 허물없는 시간을 보내며 응원대장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지난 2014년에는 이 명예회장의 지원과 '예술의 전당'을 비롯한 각 기관의 마음이 더해져 국내외 내로라하는 정상 합창단만이 선다는 '예술의 전당'에서 정기공연을 펼칠 수 있었다. ◆JW 아트 어워즈 미술 분야에 대한 후원 활동도 활발하다. 2011년부터 개최한 'JW 아트 어워즈'는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한 예술인들에게 창작의 기회를 제공하고 문화와 예술계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마련됐다. 제4회 공모전까지는 젊은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 제약업계 최초로 시도된 종합 미술 공모전을 운영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경우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재능을 펼칠 수 없는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2015년부터는 장애인 작가들을 공모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 축제로 탈바꿈했다. 그림에 많은 관심과 소질이 있지만 전문적인 지원과 교육을 받지 못하는 장애 예술가들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에서다. 정부나 지자체가 아닌 기업이 주최하는 장애인 대상 종합미술 공모전은 'JW 아트 어워즈'가 유일하다. 이밖에도 '탈북청소년 멘토링 사업'을 통해서 서초구 내 탈북청소년들이 우리 사회구성원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청소년들이 바람직한 복약 및 위생관리 습관 함양을 위해 '청소년 건강교실'을 진행하는 등 지역 사회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봉사도 진행 중이다. ◆사회공헌 커미티 신설 JW그룹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올해 '사회공헌 커미티(위원회)'를 신설하고, 기존 중외학술복지재단 중심으로 진행되던 공헌 활동을 보다 체계화해 그룹 차원의 활동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첫 나눔활동으로 '김포시 소년소녀 가장 대상 자전거 나눔 행사'를 실시했다. 올해 입사한 JW중외제약, JW신약 등 JW그룹 103기 신입사원 40여명과 김포지역 소년소녀가장 30여명이 김포시 효원연수문화센터에 모여 함께 자전거를 조립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와 함께 친밀감 형성을 위한 퀴즈 이벤트 등 다양한 레크리에이션 활동도 진행해 큰 호응을 얻었다. 앞으로 JW그룹은 '사회공헌 커미티'를 통해 기존 중외학술복지재단 중심으로 진행되던 공헌 활동을 보다 체계화하고, 그룹 차원의 활동으로 확대 발전시킬 계획이다. 창업자인 고 성천 이기석 선생의 고향인 김포시를 비롯한 다양한 지역에서 고인이 평생 실천한 생명존중의 가치를 확산시키기 위해 소외계층 지원, 장애인 후원 등 사회공헌 활동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JW중외제약은 앞으로도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성장하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 계획이다. 문화공헌 사업뿐만 아니라 CEO부터 신입사원까지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한마음으로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해외봉사활동과 주기적인 지역사회 나눔 활동 등을 통해서 생명존중 이념을 실천해나간다는 방침이다.

2018-06-04 14:50:47 박인웅 기자
[메가 히트 상품 탄생스토리] - 롯데주류 처음처럼

[메가 히트 상품 탄생스토리] - 롯데주류 처음처럼 1920년대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국내 소주공장이 만들어지면서 소주가 지금의 서민의 술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롯데주류의 전신인 강릉합동주조의 역사도 이 무렵이다. 롯데주류 소주 역사는 약 9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6년 설립된 강릉합동주조에서 강원도를 지역기반으로 한 '경월' 생산을 시작했고 당시 강원도에서 약 80%이상에 육박하는 시장점유율을 보인다. ◆녹색소주병의 시작 '그린소주' 강릉합동주조는 1973년 '경월주조', 1991년 '경월'로 상호를 변경하였다가 1993년 11월 두산에 인수되면서 '두산경월'로 출범했다. 새롭게 출범한 두산경월은 서울 수도권 소주시장 공략 제품인 '그린(Green)소주'를 1994년 1월 출시한다. 당시 일반적인 소주병의 색깔은 옅은 하늘색, 투명한 흰색이 대부분이었는 데 두산경월은 '그린소주' 제품명을 각인시키는 동시에 강원도의 자연친화적이고 깨끗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컬러마케팅을 접목하며 소주 업계 최초로 녹색 소주병을 도입했다. 소비자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녹색 소주병은 기존 소주병보다 순한 이미지로 받아들여졌고 결국 타 소주업체들도 병 색깔을 녹색으로 바꾼 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1977년도 도입된 정부의 자도주 보호법(1도(道), 1사(社)업체만 생산, 50% 점유율을 보호해 주는 법)이 1996년 폐지되면서 두산경월의 수도권 진출이 손쉬워졌다. 결국 독창적인 마케팅과 영업범위를 강원도과 수도권을 넘어 전국지역으로 확대하는 공격적인 영업으로 1997년에는 시장점율 20%를 넘어섰다. 특히 수도권에서는 31.1%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1993년 시장점유율이 5%에 불과했던 두산경월이 시장점유율 20%대로 성장한 것만 봐도 그 당시 '그린소주'가 얼마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지 알 수 있다. '그린소주'는 두산경월을 전국 브랜드로 거듭나게 한 일등공신인 셈이다. 두산경월은 해외수출에도 박차를 가했다. 1995년 일본으로 '경월'소주의 수출을 시작하는 등 사업영역을 확장해나갔다. 수출규모는 꾸준히 늘어, 1997년 11월 수출 1000만 달러를 달성할 정도였다. 이후 '경월'은 특히 일본시장에서 한국소주 판매 1위를 고수하며 한국소주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2009년 롯데주류로 새롭게 출범 후 더욱 강력한 롯데그룹의 유통 인프라가 더해졌다. 롯데주류는 롯데의 숙원인 주류사업의 기반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마케팅 활동을 한층 강화하면서 '처음처럼의 전국화'를 실현하는 데 주력했다. ◆'처음처럼'으로 업계 2위 도약 1998년 두산경월, 두산백화, 오비맥주의 와인사업부문을 통합해 새롭게 두산주류BG로 통합하여 새롭게 출범한다. 통합 후 안정적인 조직문화체계를 구축한 두산주류BG는 소주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집중했다. 같은해 12월 '뉴 그린'에 이어 2001년 소주 제조공정에 녹차 성분을 함유하여 소주 특유의 숙취를 크게 개선한 '산'소주를 출시했지만 '그린소주'만큼의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2006년 2월 '처음처럼'을 선보이며 소주시장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처음처럼'은 세계 최초로 알칼리환원수를 사용해 부드럽고 깨끗한 이미지를 강조하며 출시 17일 만에 누적판매량 1000만병, 6개월도 안돼 1억병 판매를 돌파, 소주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출시 1년만에 전국 시장점유율은 13.7%에 달했고 특히 서울은 24.4%에 이를 정도가 됐다. 출시 1년 만에 전국 2위의 소주업체로 발돋움한 것이다. ◆감성 자극 브랜드 처음처럼 제품명과 로고는 신영복 교수의 서예작품명과 서체를 그대로 사용했다. 당시 '두, 세 글자의 명사'가 일반적이던 기존 제품과 차별화할 수 있는 제품명을 고민하던 중 신영복 교수의 '처음처럼'에서 영감을 받아 제품명 사용을 요청했고 신영복 교수는 "서민의 애환을 함께하는 소주에 나의 작품이 쓰여 영광이다"며 사용을 허락했다. 처음처럼은 언제나 새 날을 맞이하듯 초심을 잊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을 소주 한잔에 담아냈다. 라벨에 기쁜 소식을 전하는 까치와 처음 땅을 뚫고 돋아나는 새싹을 형상화해 브랜드와 매칭시키며 산뜻한 느낌을 주었다. 신영복 교수의 서체는 감성적인 느낌을 그대로 살려 소비자에게 정감있고 친근하게 다가가는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술을 마신 다음날에도 몸 상태가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뜻으로 해석돼 알칼리환원수의 특징인 숙취가 적은 점도 강조할 수 있었다. ◆물 전쟁의 시작 '처음처럼'은 출시부터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당시 소주시장의 마케팅은 제품의 원료, 첨가물을 강조하는 마케팅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처음처럼'은 알칼리환원수를 사용하면서 그 동안 언급되지 않았던 물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소주의 약 80%를 구성하는 '물'에 주목했다. 알칼리환원수를 승부수로 띄웠다. 물이 알칼리 환원수로 환원되는 과정에서 물 속의 유해성분이 제거되며 물 입자가 작고 활성수소가 풍부한 알칼리 환원수가 되고, 칼슘, 마그네슘 같은 미네랄도 풍부해져 술에 사용하면 술 맛이 더욱 부드럽고 목 넘김이 좋아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물 마케팅'이 엄청난 반응을 불러오자 경쟁 소주업체도 물 마케팅을 전개했다. 특히 20세기 건강을 중요시하는 웰빙 트렌드를 반영해 알칼리환원수의 속성을 더욱 부각시키며 부드러운 맛과 적은 숙취로 소비자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된 '처음처럼'은 목넘김이 부드럽다는 특징을 소비자에게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단기간에 잃었던 점유율을 되찾았다. ◆처음처럼 모델 변천사 처음처럼이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이유로 모델을 빼 놓을 수 없다. 1대 모델 이영아을 시작으로 일관되게 마케팅 전략을 강조했다. 2대 구혜선, 3대 이효리에 이어지면서 처음처럼의 인지도가 높아지게 된다. 특히 이효리는 소주 광고선호도에서 타 소주광고에 비해 월등한 차이로 1등을 기록하며 '처음처럼'이 성장하는 원동력이 됐다. 2013년부터는 부드럽고 세련된 이미지를 두루 갖춘 조인성과 고준희를 투톱으로 기존 이효리, 걸그룹 포미닛의 현아, 카라의 구하라, 씨스타의 효린 등 댄스가수들을 중심으로 '흔드는 소주'에 주력했던 마케팅 전략에 '부드러운 처음처럼'의 제품 속성까지 강조했다. 2014년부터는 폭넓은 소비자층에 사랑받는 신민아가 처음처럼 모델로 활동했으며 2016년부터는 국민 첫사랑 '수지'가 처음처럼의 부드러운 속성을 강조하고 있다. 2016년 11월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에서 20~45세 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소주 광고 모델'로 활동한 여자연예인 중 가장 선호하는 모델이 누구인지 설문조사한 결과 1위 이효리, 2위 신민아, 수지가 3위를 기록하며 1~3위를 모두 '처음처럼' 모델이 차지하기도 했다. ◆도수변천사 처음처럼은 소주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어 나가는 선두주자 역할을 하고 있다. 21도가 주를 이뤘던 출시 당시(2006년) '20도 처음처럼'으로 부드러운 소주를 각인시켰고 2007년 도수를 19.5도로 낮추면서 1위 업체까지 동참하는 '19.5도 소주시대'를 이끌었다. 2014년 2월에는 '처음처럼'의 제품 특징인 '부드러움'을 더욱 강조하고자 7년 만에 알코올도수를 1도 낮춘 '18도 처음처럼'을 출시해 '19도 벽'을 무너뜨렸다. 특히 2014년 12월에는 '17.5도 처음처럼'을 선보이며 국내 소주시장을 강하게 흔들었고 최근에는 '처음처럼'의 대표적인 속성인 '부드러움'을 더욱 강조함과 동시에 저도화 되고 있는 주류시장의 소비 트렌드 등에 따라 알코올도수를 17.5도에서 17도로 0.5도 내려 부드러운 소주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2018-05-31 16:55:13 박인웅 기자
[인터뷰] 박종혁PD "게임빌·드래곤플라이, 가디우스 엠파이어로 글로벌 공략할 것"

하늘 위를 떠다니는 섬들과 산과 호수가 공존하는 대지 '가디우스'. 수많은 종족들이 살고 있는 땅에 '가이아 스톤'이 보관된 성소가 발견되며 가디우스 종족 간 전투가 벌어진다. 혼돈의 신 '크로노스'와 그를 추종하는 종족 '쉐도우'가 등장하며 위기에 빠진 가디우스 대륙과 가이아 스톤을 수호하려는 영웅들이 치열한 전투를 펼친다. 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가 대세인 국내 게임 시장에 천상대륙에서 펼쳐지는 전략 대규모다중접속(MMO) 게임이 30일 출격한다. 영웅의 성장요소를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운 '가디우스 엠파이어'다. 게임빌이 드래곤플라이와 손잡고 글로벌 모바일 시장을 제대로 겨냥하기 위해 3년6개월 간 공을 들인 가디우스 엠파이어는 개발 인력만 100여명이 투입됐다. '스페셜포스'로 글로벌 흥행 성공을 경험한 바 있는 드래곤플라이가 개발을 맡았다. 박종혁 드래곤플라이 개발총괄(PD)은 "글로벌 시장에서 꾸준히 잘되고 있는 전략 MMO 게임이 많다"며 "MMO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가디우스 엠파이어는 3년 정도 꾸준히 오래가는 게임이 될 것"이라고 29일 말했다. 게임빌과 드래곤플라이가 국내에 흔치 않은 MMO 게임을 택한 이유는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기 때문이다. '클래시오브킹즈'·'게임 오브 워' 등의 전략 MMO 게임은 북미 시장에서 성과를 이뤘지만, 국내에서는 최근 넷마블이 출시한 '아이언쓰론' 외에는 눈에 띄는 게임이 없었다. 박종혁 총괄은 "우리나라에서는 MMO 게임이 작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북미 시장에서는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강세인 MMORPG보다는 전략 MMO를 즐긴다"며 "가디우스 엠파이어로 북미 시장에서 장르적으로 선도를 차지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가디우스 엠파이어는 글로벌 이용자들 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영어, 일본어, 중국어(간체·번체)를 지원한다. 각 국가에서 쓰는 주요 커뮤니티 구축도 완료했다. 특히 북미 시장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를 위해 그간 방대하게 축적한 글로벌 개발 노하우가 있는 게임빌 북미 지사의 피드백이 녹아들었다. 박종혁 총괄은 "게임빌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글로벌 경험을 가지고 있어 도움을 받았다"며 "특히 사용자인터페이스·경험(UI·UX) 부분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그는 전략 MMO의 강점으로 자신의 성과 마을을 짓고, 키워가는 재미를 꼽았다. 이를 위해 350여개에 달하는 영웅 캐릭터에도 공을 들였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모습보다는 북미 시장에서 먹히는 강하고 러프한 느낌의 캐릭터를 채택했다. 영웅 캐릭터별로 물, 불, 바람, 땅 4가지 속성과 별자리, 특성 등을 고려해 전략적인 배치를 할 수 있다. 박 총괄은 "한 번 전투에 지거나 망하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는 시스템이 보편적이지만 가디우스 엠파이어는 회복이 가능해 영웅이 한 번에 죽지 않아 허무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가디우스 엠파이어의 특징은 워(WAR) 게임에 역할수행게임(RPG) 요소를 접목시킨 것이다. 박 총괄은 "전략 MMO인데 수집형 RPG 장르가 가미된 점이 특징"이라며 "영웅을 진화시키고 강화해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점이 색다른 재미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반전을 꾀하는 게임빌이 많이 알려진 IP를 채택하지 않고 자체 IP로 승부하는 이유는 장기적인 흥행을 위해서다. 박 총괄은 "로열티 수익 부분이나 광고 효과를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 자체 IP가 좋다고 판단했다"며 "우리 게임의 콘셉트에 일치하는 IP가 없었던 것도 자체 IP를 만든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비공개 시범 테스트(CBT)에서 얻은 이용자들의 피드백은 막판 게임 벼리기에 녹아들었다. 피드백을 바탕으로 영웅의 회복 시간을 단축하고 UI 플로어를 편리하게 구성했다. CBT 당시 이용자들은 특히 수집형 RPG 장르가 가미된 점에 대해 대부분 '신선하다'는 긍정적인 평을 내렸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사업부와 충돌이 있었지만, 과금 요소는 줄였다. 박 총괄은 "과금 없이도 꾸준히 시간을 투자해 게임을 하면 성장할 수 있도록 게임을 구성했다"며 "오랜 기간 즐기면서 장기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모델을 만들기 위한 시도"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궁극적으로는 가디우스 엠파이어를 통해 우리나라 MMO 시장이 성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 총괄은 "우리나라의 전략 MMO 게임 비중이 다른 장르에 비해 떨어지지만 가디우스 엠파이어로 MMO 게임 시장 파이가 늘어났으면 좋겠다"며 "롱런하는 게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2018-05-29 15:35:02 김나인 기자
[새벽을 여는 사람들] "기술 보다는 소통이 우선"…아름다움을 끌어내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하수미 실장

결혼식부터 면접, 방송 프로그램 출연까지. 주인공이 되는 중요한 순간을 새벽부터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의 얼굴과 생김새, 전체적인 분위기를 고려해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꾸미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다. 눈이 부실 듯 화려한 조명과 수백·수천가지의 색조 화장품, 메이크업 도구들은 이들의 삶이 화려할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27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본샵에서 만난 9년차 메이크업 아티스트 하수미(31)씨는 "화려해 보인다는 편견이 있지만 보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직업"이라고 소개했다. 하수미 실장의 하루는 새벽부터 시작한다. 정해진 출근 시간은 없지만, 결혼식 등 중요한 행사로 찾는 손님이 있으면 새벽 5시에 나오기도 부지기수다. 일이 많은 주말에는 끼니도 거르고 하루에 스무 명이 넘는 고객의 메이크업을 하기도 한다. 고객들 대다수가 결혼이나 면접, 촬영 등 목적이 있어 찾아오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고 일터에 나선다. "시작은 평범했어요. 평생 화장을 가꾸고 꾸미는데 직업으로 하면 어떨까 해서 단순하게 미용 학원을 다니면서 준비했죠." 어릴 때부터 메이크업에 관심이 많았던 하 실장은 20대 초반에는 백화점에서 화장품 판매를 하기도 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개인 숍에서 스탭 생활을 3년 간 하다가 2010년께 프리랜서로 독립했다. 경험 많은 메이크업 아티스트 밑에서 오랜 기간 훈련을 통해 평가를 받는 일반적인 과정과는 다른 길을 선택한 셈이다. 메이크업 출장 서비스를 시작해 닥치는 대로 들어오는 일을 하다 보니 오히려 실력과 인맥은 나날이 늘어났다. 주로 연예인이나 모델들의 쇼나 광고촬영 등의 일감이 들어왔다. "연예인이나 모델들의 메이크업은 촬영 목적에 따라 달라져요. 렌즈 광고를 촬영하는 모델의 경우는 색조 화장보다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기본 화장을 위주로 하고, 스포츠 의류의 경우는 활동적인 모습을 색조 화장을 통해 강조하는 식이죠." 본샵에 자리를 잡고 나서는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 단골손님도 부쩍 늘었다. 결혼식을 앞둔 신부나 졸업하는 학생, 면접을 보는 취업준비생들이 주 고객층이다. 하 실장은 9년간 경력을 쌓은 실력파답게 눈빛과 스타일만 봐도 어떻게 메이크업을 해야 하는지 감이 온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고객이 원하는 메이크업을 하기 위해서는 메이크업 전 상담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목적과 취향에 따라 메이크업 스타일이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메이크업 실력과 함께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은 의외로 사람을 상대하는 기술과 소통능력이다. "메이크업 기술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대인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아티스트 마인드를 무작정 고집하면 같이 일하는 사람이나 손님들과 부딪칠 수 있어요. 메이크업도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내성적이었던 성격이 외향적으로 바뀐 것도 메이크업 아티스트 일을 하면서부터다. 연령대가 같지 않아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고객들과 유대 관계를 쌓아가는 식이다. 소개팅 할 때 메이크업을 받았던 단골 고객이 결혼식과 자녀 돌잔치 메이크업까지 받아 중요한 순간을 함께 하기도 했다. 일이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그는 꾸준히 메이크업 공부도 멈추지 않는다. "요새는 눈 화장보다는 입술을 강조하는 메이크업이 대세에요. 패션 잡지뿐 아니라 손님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스타일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어 트렌드는 놓치지 않는 편입니다." 안 해 본 메이크업이 없다는 그는 부모님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고 강조했다. "새벽부터 일을 나가고 쉬는 날이 별로 없으니 안쓰러워하시지만 부모님은 지금도 딸이 메이크업 아티스트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시곤 해요. 항상 감사하죠. 저 또한 메이크업을 받은 고객들이 달라진 모습을 보고 만족하고 좋아하시는 걸 보면 보람을 느껴요. 그게 단순하지만 제가 일을 계속 하는 원동력이죠."

2018-05-28 07:31:39 김나인 기자
[메가 히트 상품 탄생스토리] - 맥도날드 빅맥

[메가 히트 상품 탄생스토리] - 맥도날드 빅맥 맥도날드 빅맥은 미국 문화의 일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빅맥은 1967년 미국 피츠버그 맥도날드 유니언 타운에서 첫 판매 시작했다. 1년 뒤 전국적으로 출시될 당시 50억개가 팔리면서 히트 상품으로 등극했다. 맥도날드는 1988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1호점을 오픈하고 한국에 진출했다. 이후 빅맥, 후렌치 후라이, 해피밀과 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맥도날드의 메뉴를 한국 시장에 선보이는 한편, 불고기 버거, 맥스파이시 상하이 버거, 1955버거 등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제품을 내놓았다. 빅맥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인기 메뉴 중 하나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빅맥을 국제 통화 가치를 비교하는 수단으로 사용해 '빅맥지수'를 발행하고 있다. 빅맥의 판매가격을 기준으로 각국의 상대적 물가수준과 통화가치를 비교하는 지수다. ◆빅맥의 탄생 빅맥은 맥도날드의 상징과도 같은 햄버거다. 1967년 미국 피츠버그의 로스 타운십(Ross Township)에 위치한 맥도날드 레스토랑에서 처음 개발됐다. 해당 지역에서 맥도날드 식당을 여럿 보유했던 짐 델리가티(Jim Delligatti)는 주변 경쟁 레스토랑에 대응할 '핫'한 메뉴를 고민하고 있었다. 경쟁 레스토랑 중 한 곳이던 이트 앤 파크(Eat'n Park)에서 빅보이(Big Boy) 샌드위치가 흥행하자 델리가티는 이에 견줄만한 대형 햄버거를 고안했다. 피츠버그 내 위치한 맥도날드 유니언 타운점에서 오늘날 빅맥의 원조(소고기 패티 2장, 번 3개, 치즈 1장, 양상추, 양파, 스페셜 소스)가 처음 판매됐다. 가격은 45센트였으며, 피츠버그 지역에서 그 인기가 검증된 빅맥은 출시 1년 만에 맥도날드 전체 지점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1988 한국 진출 한국맥도날드는 지난 1988년 한국에 문을 열고 빅맥, 후렌치 후라이, 해피밀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맥도날드의 대표 메뉴를 국내 시장에 소개하는 한편, 불고기 버거, 맥스파이시 상하이 버거, 1955버거 등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춘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꾸준히 선보였다. 또한 간편하면서도 건강한 아침 메뉴인 '맥모닝'과 '행복의 나라 메뉴' 등을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업계 최초로 24시간 매장을 운영하고 맥드라이브(McDrive), 맥딜리버리 서비스(McDelivery Service), 모든 접점에서 최상의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미래형 매장 등 혁신적인 플랫폼을 도입해 국내 퀵서비스레스토랑(QSR) 업계의 리더로 자리매김해 왔다. 약 1만7000여명의 직원들이 근무하는 한국맥도날드는 학력, 나이, 성별, 장애 등에 차별 없는 열린 채용으로 한국 사회의 고용 창출에 일조하고 있으며, 실제 1600여명의 주부 크루, 320여명의 시니어 크루, 240여명의 장애인 크루가 근무하고 있다. ◆한국 외식업계 '최초'의 역사 지난 30년 동안 업계를 선도해 온 맥도날드는 끊임없이 '최초'의 역사를 쓰며 한국 외식시장을 개척했다. 맥도날드는 변화하는 한국 고객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발맞춘 새로운 서비스와 플랫폼들을 최초로 선보이며 국내 퀵서비스레스토랑 업계의 서비스 품질을 높이고 고객 편의를 제공했다. 1992년 부산 해운대점에 국내 최초 드라이브 스루인 '맥드라이브' 도입했다. 최근 10년 동안 맥드라이브를 이용한 차량은 총 1억7000만대로, 2007년 200만대에서 2017년 3500만대로 17배 증가했다. 2018년 현재 맥드라이브 매장 252개로 국내 최다다. 2005년 업계 최초 '24시간 매장' 영업을 시작했으며, 2006년 업계 최초 아침 메뉴 '맥모닝' 출시했다. 2007년 업계 최초 주문배달 서비스인 '맥딜리버리' 도입했다. 2016년 서울 상암DMC점에 업계 최초 '미래형 매장' 도입했다. 이곳은 '쾌적한 매장 환경, 프리미엄 버거 제공, 디지털 메뉴보드 및 디지털 키오스크 등 디지털 경험 강화, 고객 중심적인 서비스' 등을 통해 고객들에게 최상의 레스토랑 경험을 제공한다. ◆글로벌 외식업계 최대 수준의 국내 고용 창출 1988년 100여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맥도날드는 현재 한국 고용 시장에서 1만7000여명의 일자리를 창출해 내고 있다. 이는 글로벌 외식업계 최대 수준이다. 최근 10년간 신규 직원 채용 매년 3.7% 증가했다. 매년 100~300명의 매장의 시간제 아르바이트 직원인 크루를 정규직 매니저로 전환 채용, 최근 10년간 총 2242명의 시간제 크루를 정규직 매니저로 전환 채용했다. 맥도날드의 고용 문화에서 가장 큰 특징은 학력, 나이, 성별, 장애 등의 차별이 없는 '열린 채용'으로 취업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도 적극적으로 고용하고 있다. 또한 맥도날드는 양성평등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기업문화로 여성 인재 양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업계 최초로 주부 채용의 날을 개최하며 결혼, 육아 등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워킹맘들의 재취업 장려했고, 2000년대 초반부터 시니어 채용에도 앞장섰다. 현재 장애인 직원 240여명, 고용률 3.5%로 민간기업 법정 의무 고용률 2.9%를 상회한다. 여성 임원 비율 35%로 국내 500대 기업 평균 2.7%보다 높다. ◆가맹점주와 동반 성장 맥도날드는 60년이 넘는 글로벌 프랜차이즈 노하우를 바탕으로 가맹점주와 공급업체, 본사가 서로 상생하는 건강한 프랜차이즈 모델을 오랫동안 유지해오고 있다. 국내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는 최근 들어서야 로열티 제도 도입이 논의되고 있지만, 맥도날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로열티 제도를 도입해 가맹점이 수익을 올리면 본사도 수익을 올리는 선순환 구조를 갖췄다. 맥도날드는 가맹점주의 안정적인 사업 운영을 위해 장기 계약을 맺는 것은 물론 재무, 인사, 마케팅 등 다양한 영역의 컨설팅도 제공하고 있다. 맥도날드는 가맹점주와 10년 이상의 장기 계약을 바탕으로 가맹점주가 안정적인 사업 운영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같은 신뢰를 바탕으로 부산 지역의 한 오너는 최장 23년째 맥도날드 매장을 운영 중이다. ◆빅맥지수 빅맥지수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1986년부터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발표한다. 햄버거 가격으로 경제 상황을 설명한다고 해 '햄버거 경제학'이라는 뜻의 버거노믹스(Burgernomics)라고도 한다. 이 지수는 '환율은 각국 통화의 상대적 구매력을 반영한 수준으로 결정된다'는 구매력평가설, '동일 제품의 가치는 세계 어디서나 같다'는 일물일가의 법칙에 기반하여 적정환율을 산출한다. 이 환율을 빅맥환율이라고도 한다. 그 기준으로 전세계 어디서나 재료 구성이나 조리법, 크기가 표준화되어 있는 '빅맥' 햄버거 가격을 미국의 달러화로 환산해 각국의 상대적 물가수준과 통화가치를 비교한다. 이 지수가 처음 발표된 이래로 시장환율과 적정환율 사이의 차이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지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 지수가 낮을수록 해당 통화가 달러화보다 저평가된 것으로, 높을수록 고평가된 것으로 해석된다.

2018-05-24 10:42:38 박인웅 기자
[되살아난 서울] ⑰ 궁 안에 숨겨진 비밀의 화원··· 창경궁 대온실

조선시대 궁궐 중 유일하게 동향으로 배치된 창경궁의 정문 홍화문에서 오른쪽 샛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궁에 어울리지 않는 서양식 건축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얀색 철골로 둘러싸인 유리 온실은 1909년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다. 창경궁 대온실은 2013년 문화재청이 실시한 '국가지정 문화재 특별 종합점검'에서 목재 부식 등 안전상의 문제가 발견돼 1년 3개월간의 보수공사를 마치고 지난해 11월 다시 문을 열었다. ◆꽝꽝나무부터 팔손이나무까지 "엄마, 이 나무는 이름이 꽝꽝이래요." 지난 20일 창경궁 식물원에서 만난 한 꼬마가 나무 앞에 있는 이름표를 확인하고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꽝꽝나무 옆에는 사람 손바닥처럼 생긴 이파리가 무성한 팔손이나무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초등학교(옛 국민학교) 동창들과 식물원을 찾은 박월선(75) 씨는 "나무랑 꽃을 좋아해 평소 식물원에 자주 오는데 이런 천연기념물들은 볼 기회가 좀처럼 없다"면서 "친구들과 산책도 하고 희귀한 식물도 보고 일석이조"라며 즐거워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2000년 이후부터는 국내 자생식물 위주로 전시해오고 있다"며 "천연기념물 후계목(모수에서 직접 채취해 키운 나무)을 전시해 창경궁 식물원만의 특색을 살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천연기념물 옆에는 상어의 날카로운 이빨처럼 생긴 파리지옥과 부부젤라 모양의 네펜데스가 있었다. 식충식물 네펜데스 안에 갇힌 개미를 본 아이들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식충식물 구역에서 스무 발자국 정도 전진하면 양치식물 구역이 나타난다. 비늘고사리, 좀쇠고사리, 주저리고사리, 들토끼고사리 등이 심어져 있다. 잎이 길게 늘어져 있어서인지 애·어른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고사리를 만지고 잡아당겼다. 고사리뿐만 아니라 온실 내 많은 식물들이 매너 없는 관람객들로 인해 수모를 겪고 있었다. 식물원 곳곳에 '만지지 마세요. 눈으로만 보세요'라는 푯말이 붙어있었지만, 사람들은 경고문을 무시하고 식물들을 괴롭혀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관리소에서 자주 순찰을 다니면서 관람객들에게 '만지지 말아 달라'고 양해를 구하고 있는데, 일부 관람객 중 '사람들 많은 데서 면박을 준다'며 기분 나빠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어려움이 있다"며 "다른 분들도 배려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코끼리랑 벚나무는 어디 갔나요?" 이날 식물원을 찾은 관람객 중에는 반세기 전 창경원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도 있었다. 성북구 정릉동에서 세 자매와 함께 궁을 찾았다는 조월자(73) 씨는 "지금은 여의도에서 벚꽃놀이를 하지만, 내가 20대 초반일 때는 사람들이 창경원으로 벚꽃놀이를 왔다"면서 "동생들은 여기로 소풍하러 와 동물원에서 코끼리도 보고, 식물원 구경도 하고 그랬다"며 추억을 회상했다. 조 씨와는 정반대로 창경궁 온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시민도 눈에 띄었다. 노원구 월계동에 사는 박모(72) 씨는 "일제의 잔재는 싸그리 다 없애야 한다"며 "일본이 만든 식물원이 왜 아직도 창경궁에 남아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혀를 끌끌 찼다. 이에 문화재청 관계자는 "일제의 잔재를 전부 없애는 게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는 게 될 수 있다"며 "그 시대에 지어졌다고 해서 다 없애기보다는 역사적 의의나 배경,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문화유산을 존치할 것인지 폐쇄할 것인지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창경궁 대온실은 1907년 일본 황실 식물원 책임자 후쿠바 하야토가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시공해 1909년 건립됐다. 일본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을 창덕궁에 가둬놓고는 왕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지었다. 일제는 한일합병조약 체결 후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켜 버렸다. 왕이 살던 궁궐은 벚꽃놀이, 불꽃놀이가 열리는 유원지로 전락했다. 창경궁은 광복 40여 년이 지나서야 옛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1983년 창경궁 복원 공사가 시작되면서 궁 안에 있던 위락시설인 동물원은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이전했고, 벚나무들은 여의도 윤중로로 옮겨 심어졌다. 창경궁 내 일제가 지은 건물을 모두 철거됐지만, 대온실은 대한제국 말기에 들어온 서양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유산으로 인정받아 2004년 2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받아 보존됐다. 강북구 번동에서 온 채명국(58) 씨는 "아픈 역사지만 이렇게 건축물로 남겨 놓고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며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식물원 입구에 창경원 식물원의 가슴 아픈 역사 등을 적어 놓은 안내문이 없다는 거다"고 말했다. 채 씨는 "사람들이 식물원을 둘러 보면서 창경궁에 유폐된 순종의 심정을 헤아려보면 더 좋은 역사 교육의 장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종종 어르신들이 와서 과거 소풍 왔을 때 기억을 더듬어 '코끼리는 어디 갔냐?'고 물어보시곤 하는데, 그럴 때는 자료를 찾아서 따로 알려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어 "창경궁 온실 앞에 건물 보수 이력을 전부 기술한 안내문을 따로 설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면이 있다"며 "관련 사항은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자세하게 나와 있으니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18-05-22 13:28:24 김현정 기자
[새벽을 여는 사람들] "소중한 내 마음, 커피 마시며 운동하세요" 심리상담카페 '제다움' 인수형 소장

새벽 5시. 불개미 수만 마리가 인수형(47)씨의 다리를 물어뜯으며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뼛속까지 붙어 사는 "뜨겁고 차갑고 시리고 가렵고 저린" 통증은 먹이를 문 개미처럼 물러날 기색이 없다. "아침에 세 알, 점심엔 필요할 때만 두 알, 저녁에 세 알…." 잠시나마 놈들의 입을 닫으려면 꾸준히 약을 삼켜야 한다. 명상과 요가로 밤새 굳어진 근육을 풀고는 수영장으로 향한다. 두 손 안에 쏙 들어가는 허벅지 근육을 사정없이 흔들어 깨운 뒤에는 서울 성동구의 '제(Je)다움 심리상담카페'에서 손님을 맞는다. 전직 SBS 뉴스 PD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사건이 만든 일과다. ◆'3층 추락'이 가져온 좌절과 기적 지난달 24일 제다움에서 만난 인수형 소장은 드립커피를 마시며 화마에 삼켜진 커피콩의 고통을 되돌아보았다. "1993년 방송국 입사 이후 뉴스 PD만 해오다가, 2003년 조용필 콘서트 DVD 제작에 참여하면서 '이런 세상이 있구나. 괜찮네' 싶더라고요. 영상미의 확장성을 동경했지요. 2005년 명예퇴직 이후 각종 콘서트 스태프로 경험을 쌓고, 2010년에는 친정 회사(SBS)의 외주제작사를 차렸어요. 지난해에는 경기대 영상예술학 박사 학위도 받았고요." 끝없이 헤엄쳐야 숨을 쉬는 참치와도 같이, 그에게 영상은 드넓은 바다였다. 멈출 줄 모르던 그의 질주는 2012년 2월 어느 날, 차디찬 운명의 그물에 걸리고 말았다. "어느 업체의 홍보 영상 촬영장이었어요. 원하는 그림이 안 나와서 난간에 있는 카메라 감독을 지도하다가 균형을 잃고 떨어졌죠." 3층 높이에서 추락한 그의 척추 12개가 부러지고 골반 4군데에 금이 갔다. 두개골이 갈라진 여파로 오른쪽 귀로는 소리를 못 듣게 됐다. 이대로 주저앉나 싶었지만, 반년만에 기적이 찾아왔다. "신경이 돌아오는 과정에서 열이 40도까지 올라갔어요. 무릎을 치면 반응 없던 다리가 올라오기 시작했죠. 휠체어냐 운동화냐, 아찔한 갈림길에 서 있던 겁니다." 하지만 그는 이 사고로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RPS) 환자들과 같은 고통을 평생 안고 가야 한다. CRPS는 원인을 알 수 없지만, 그가 겪는 사고 후유증은 아픔의 정도가 같다고 한다. 다시 일어서는 과정도 험난했다. 중추신경이 돌아오자, 인 소장의 다리는 걸음마를 배우기 전 아기의 상태가 되었다. 중력의 힘을 견디며 기어다니다 기계에 의존해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물 속에서 꾸준히 걸었다. 2013년 퇴원 당시 짚었던 두 개의 지팡이는 일 년 만에 내려놓았다. "보통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걷지만, 저는 왼쪽 발의 뒤꿈치가 닿는 순서도 일일이 계산해가며 걸어야 해요. 그래서 제가 걷는 모습은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죠." ◆나를 돌아보다 심리상담 결심 극한의 고통은 인 소장이 타인의 마음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2013년 퇴원 이후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 시달린 그는 일 년을 집에서만 보냈다. "동생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 하더군요. '형이 그렇게 괴로워한다고 해서 낫지 않는다. 만일 그렇게 해서 낫는다면 계속 그렇게 해라. 하지만 일어나야 한다'며 커튼을 걷으니 빛이 방에 들어찼어요." 의사와의 상담을 시작한 인 소장은 고통의 실체를 파헤치려 심리학도 공부했다. 마음 치유를 위한 우쿨렐레 연습도 시작했다. 평소 즐기던 커피와 차, 자신처럼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인 공간을 열망했다. 카페에서 활용하기 위한 심리상담사 자격증은 2016년 취득했다. 인 소장은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사람들이 자주 찾는 '마음 운동장'을 짓는다는 목표로 지난 1월 1일 성수동 골목에 제다움 카페의 문을 열었다. 제(Je)는 '나'를 낮추는 말이면서 프랑스어로도 자신을 뜻한다. 혼자서 8평짜리 1층 내부를 친환경 소재로 꾸민 인 소장은 비슷한 규모의 지하 1층 작업도 이어가고 있다. 또 다른 직업인 PD 업무로도 바쁜 나날을 보낸다. "한 시간에 10만원 받는 심리상담센터와는 다르게 만들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차 한 잔 값으로 간단한 상담을 해 보는 거예요. 아파트 문화가 뿌리깊은 서구와 달리 우리나라는 마당 정서가 강해서, 사람들이 카페에서 툭 터놓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거든요." 그가 말하는 '마음 운동'은 일상적인 훈련이다. "우리의 몸을 계속 단련 시키면, 사고를 당했을 때 덜 다칠 수 있어요.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이 있어야만 찾는 단절되고 조용한 공간이 아니라, 자주 들러 얘기하고 자존감을 찾아갈 카페가 필요합니다. 피트니스센터에서 트레이너의 개인 지도를 받는 것처럼, 마음 역시 평소에 그렇게 운동해야 돼요." 가끔 찻잔을 들고 인 소장과 담소를 나누는 손님은 20여명이다. 본격적인 상담 프로그램은 총 3단계로, 단계마다 10회에 걸친 상담이 진행된다. 현재 1단계를 등록한 9명 대부분이 5회차 이상을 마쳤다. "우선 자신이 감상한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싶고, 이유는 무엇인지 이야기해요. 그럼 그 사람 안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게 돼요.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자체만 건드리면 안 좋으니까 영화를 주제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죠. 그 일이 일어난 이유를 살펴보며 2단계에 접어들어요. 사람들은 대개 어린시절의 아픔 때문에 지금 문제를 겪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걸 끊어줘야 해요. 만일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했다면, 당시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특정 상황이 왔을 때 순식간에 과거의 기억이 덥쳐와 괴롭습니다. 그걸 끊으려면 꾸준히 상담 해야 돼요. 내 안에 이것이 있다고 인정하되, 앞으로 끄집어내지 않는 방향으로 상담합니다." 마지막 단계에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계획중인 1박 2일 템플스테이와 레크리에이션이 포함된다. 템플스테이의 경우,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를 종이에 적고 불에 태우는 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마음이 건강한 공동체 늘리고파" 제다움 카페는 그가 구상하는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이다. "동네 가게나 작가들과 제휴해서 상담자들에게 우쿨렐레 연주와 미술, 액세서리 공예 수업료를 한 달 간 절반으로 깎아줘요. 빵집과 목공예 등 다른 제휴도 추진 중이죠." 이렇게 사람들이 마음을 치유하며 취미에 몰두하다 보면, 그 일이 직업이 될 수도 있다. 이후에는 본인도 다른 사람들에게 해당 기술을 가르치는 선순환이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올해 인 소장의 목표는 5개점 확보다. 지금은 강남에 들어설 2호점 준비가 한창이다. 점주는 자기 분야를 꾸준히 연구하고 학생 면담도 많이 해 온 대학 교수들이 대상이다. 2호점주 역시 교수라고 한다. 고통을 달고 살면서도 쉴새없이 움직이는 이유를 묻자 "우리는 누구나 죽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제가 죽었을 때 어떤 사람으로 남게 될까 생각하니, 이 삶을 게을리 보낼 수가 없었어요. 그러니 어차피 지나가는 시공간 속에서 평생 먹어야 할 약들이 단지 '밥'으로 남게 되었죠(웃음)." 한끼 식사처럼 고통을 삼키며 따뜻한 마음의 밥을 짓는 인수형 소장은 무료로 상담받을 청소년들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주에 고등학생 셋이 가게 옆에서 담배를 피우기에 '스트레스 때문이라면 나에게 오라'고 했어요. 카페에 청소년 무료 상담 플래카드를 붙이려고 해요. 그 아이들이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

2018-05-20 13:22:21 이범종 기자
[되살아난 서울] ⑯ 키워드 '야생'··· 도롱뇽, 버들치 기다리는 '이촌한강생태공원'

등대처럼 생긴 전망대 두 개가 마주 보고 있는 한강대교 북단 철교 밑에는 초록빛 물결이 넘실거리는 이촌한강생태공원이 있다. 서울시는 생태적 잠재력이 높은 지역에 자연형 호안과 소생물 서식처를 복원하는 자연성 회복 사업을 진행해 지난해 12월 이촌한강생태공원의 문을 열었다. 이촌한강생태공원은 한강대교와 원효대교 사이 약 1.3km 구간에 9만7100㎡ 규모로 만들어졌다. 공원에는 생태 복원을 위한 자연형 호안, 천변 습지, 논 습지와 시민들을 위한 자전거도로, 산책로, 생태놀이터 등이 조성됐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꿈꾸다 "우와~ 소금쟁이가 두 마리나 있네?" 지난 13일 이촌한강생태공원을 찾은 어린이들은 물 위를 미끄러지듯 돌아다니는 소금쟁이의 가느다란 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용산구 청파동에서 온 조영균(36) 씨는 "아이들이 도시에서 자라서 습지는커녕 논조차 볼 기회가 없어 아쉬웠는데, 가까운 곳에 생태공원이 생겨서 기쁘다"며 밝게 웃었다. 이촌한강생태공원 습지에는 경남 창녕군에서 기증받아 심은 우포늪 습지식물 6종이 식재되어 있다. 조 씨는 "안내푯말을 보면 창포, 부들, 매자기, 송이고랭이 등 4600본의 습지 식물을 심어놨다고 나왔는데 아직 다 자란 것 같지도 않고 별로 많아 보이지도 않는다"며 아쉬워했다. 이에 서울시 관계자는 "생태공원은 일반 근린공원처럼 처음부터 아름답게 완성된 식물을 빽빽하게 심어놓는 게 아닌 습지 식물이 살만한 최소한의 여건을 만들어 자연성을 회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노량진 고시촌에서 생태공원을 찾은 공무원 시험 준비생 이석영(29) 씨는 "정자에 앉아 버드나무 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걸 보니 스트레스가 좀 풀린다"며 미소 지었다. 이 씨는 "그런데 공원을 조성만 해놓고 관리는 제대로 안 한 것 같다"며 "오면서 봤는데, 습지는 물이 다 말라 있고, 전망대 뒤쪽은 예초 작업을 안 해 놔서 풀들이 지저분하게 자라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습지는 상태에 따라 양수기로 물을 채워 넣는데 전날 비가 와서 기계를 꺼놓은 것 같다"며 "확인 후 시정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전망대 뒤편에 심은 쇠무릎은 최대 1m까지 자라는 식물"이라며 "야생 경관 조성을 위해 따로 예초 작업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자전거가 '쌩쌩'··· 실종된 시민의식 이촌생태공원에는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훼방꾼들이 존재했다. 도로 위의 무법자 '자전거족'이다. 용산구 보광동에서 온 박윤성(24) 씨는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쌩쌩 달려 부딪힐 뻔했다"면서 "심지어는 자전거 도로가 아닌 보행로로 달리는 사람도 있었다"며 불같이 화를 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한강 자전거길 제한속도인 시속 20km를 10km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생태공원 강변 쪽과 도로 쪽에 산책로와 자전거도로가 각각 따로 만들어져 있음에도 일부 자전거족들은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생태 복원을 위해 조성된 이촌한강공원에서 낚시를 하는 시민도 눈에 띄었다. 한강생태공원은 낚시 제한구역으로 제한사항을 준수한 경우에만 낚시를 할 수 있다. 제한사항에는 '낚싯대를 4대 이상 사용할 수 없다'고 나와 있지만, 대부분이 4대 이상의 낚시대를 사용해 어류를 포획하고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원 내 청원 경찰이 24시간 근무하며 계도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위반사항을 다 잡아내기 어렵다"면서 "가장 중요한 건 시민의식이다"고 강조했다. 강남구 삼성동에서 한강공원을 찾은 이윤희(64) 씨는 "강변에 앉아 있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한강에서 하수구 냄새가 심하게 나서 자리를 털고 나왔다"며 "사람들이 마시고 사용하는 물인데 수질 관리를 제대로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에 서울시 관계자는 "한강 물을 유람선 운항 등의 이유로 호수처럼 가둬놔 물이 흐르지 않아 나는 냄새"라며 "신곡수중보를 철거해야 한강을 옛 하천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8-05-15 11:03:23 김현정 기자
[살맛나는세상이야기]교보생명의 '나눔 재생산'

교보생명은 생명보험사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건강, 돈, 지식 등 결핍으로 인한 삶의 역경을 극복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짜임새 있고 차별화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관련 분야 전문성과 노하우를 지닌 비영리단체와 파트너십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공헌모델을 만들고 있다. 특히 저소득 가정, 미숙아, 여성 가장 외 체육인 등 지원을 통해 이들의 역량개발을 돕고 또 다양한 사회적 일자리를 마련해 스스로 역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 사회적으로 나눔이 재생산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교보생명은 이 같은 일련의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기존의 기업사회공헌 방식에 일대 변화를 시도하여 새로운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천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교보생명 특유의 짜임새 있고 사회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활동들은 기업 사회공헌활동의 우수 모델로 평가 받고 있다"고 말했다. ◆ 다솜이 작은 숨결 살리기 교보생명의 대표적인 사회공헌사례로는 먼저 이른둥이(미숙아)에게 치료비를 지원하는 '다솜이 작은 숨결 살리기'를 들 수 있다. 교보생명은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지난 2004년부터 다솜이 작은 숨결살리기 사업을 펼치고 있다. 세상에 조금 먼저 태어난 이른둥이들이 건강을 회복하여 소중한 생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고 경제적·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 가정을 지원한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입원치료비는 물론 재활치료비(만 6세 이하)를 이른둥이 출산가정에 지원하고 있다"며 "본인부담 병원비의 70%, 최대 2000만원까지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이른둥이 지원사업에 쓰이는 비용은 교보생명 재무설계사(FP)들이 자발적으로 십시일반 모금하면 여기에 회사 지원금을 보태 지원하는 방식으로 모아진다. 매달 4000명이 넘는 재무설계사들이 모금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렇게 모인 금액으로 지금까지 2392명의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민간 최초의 이른둥이 지원사업으로 이른둥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건강한 나눔문화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 교보생명컵 꿈나무 체육대회 교보생명은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 스포츠를 이끌어갈 체육 유망주를 발굴·육성하는 데에도 앞장 서고 있다. '교보생명컵 꿈나무 체육대회'는 민간에서 열리는 국내 유일의 유소년 전국 종합체육대회다. 교보생명은 지난 1985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육상, 수영, 빙상, 체조 등 7개 기초종목에 4000여 명의 초등학생이 참가하는 전국대회를 열고 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재정이 여의치 않은 선수들도 대회에 참가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모든 선수단에게 교통비와 숙식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우수선수와 학교에는 장학금도 준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교보생명컵 꿈나무 체육대회를 거쳐간 어린 선수는 13만명 수준. 이 가운데 350여 명의 국가대표 선수를 배출하기도 했다.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2회 연속 획득한 이상화를 비롯 유도의 최민호·김재범, 체조의 양학선·양태영, 수영의 박태환, 탁구의 유승민·오상은, 육상의 이진일·이진택, 쇼트트랙의 최민정·심석희·박승희, 스피드스케이팅 이승훈 선수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획득한 메달 수 만해도 150여 개에 달한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교보생명의 꿈나무 후원은 다른 기업의 빅스타 후원이나 프로구단 운영과 달리 비인기 종목에 집중돼 있고 장래가 불확실한 초등학교 유망주에 대한 지원이라는 점에서 공익적 성격이 강하다"며 "체육계에서는 이러한 후원방식이 기초종목을 활성화시키고 저변을 넓혀 스포츠 발전의 디딤돌이 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 교보 다솜이재단 교보생명은 이 외 대한민국 사회적 기업 1호인 '다솜이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03년 시작한 '교보 다솜이 간병 봉사단'을 모태로 한다. 교보 다솜이 간병 봉사단은 저소득층 환자에게 무료 간병서비스를 제공하여 건강회복을 돕고 일자리가 필요한 취약계층 여성 가장들에게는 일자리 제공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돕는다. 지난 2007년 10월 교보다솜이간병봉사단은 다솜이재단으로 전환되어 같은 해 11월 정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1호 인증을 받았다. 한편 교보생명은 대산농촌재단, 대산문화재단, 교보교육재단 등 3개의 공익재단 운영과 함께 국민체육진흥, 문화예술 지원사업 등 다양한 공익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IMG::20180514000151.jpg::C::480::지난 2016년 열린 제1기 교보 청소년 리더십 스쿨 '체.인.지' 입학식에서 학생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체.인.지'는 교보생명과 교보교육재단이 손잡고 진행하는 청소년 리더십 스쿨로 체계화된 리더십 교육을 통해 청소년의 전인적 성장을 돕고 참사람 육성이라는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마련됐다./교보생명}!]

2018-05-14 16:14:04 이봉준 기자